수능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평가원은 수능의 목적이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수능이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했다면 그 핵심 목적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또한 선행교육 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선행교육 규제법에서는 분명히 학교가 교육과정을 잘 준수하도록 관리 감독할 책임을 국가에 부여하고 있습니다.(제 4조) 그런데 국가가 대입 선발을 목적으로 시행한 시험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했다는 것은 엄연히 법에 위배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자행한 위법 행위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가 배상해야 할 것입니다.
■ 12월 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례적으로 2019학년도 수능 출제 문항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공개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소위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국어 31번과 수학 가형 30번 문제의 경우 고교 교육과정 위반 소지가 다분함.
지난 12월 4일 평가원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2019 수능’을 출제하는 데 있어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향후 고난도 문제 출제를 지양하겠다는 내용 등을 포함한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또한 역대 수능시험 이후 발표하지 않았던 수능 출제 문항의 교육과정 근거를 평가원 홈페이지에 게시(12월 5일)했습니다. 이같은 평가원의 행보에는 역대급 고난이도 수능 출제로 수험생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국민적 비판이 있었습니다. 특히 초고난도 문제로 불리는 국어 31번 문제의 경우 지문의 길이·소재·난도를 고려할 때 비판의 화살을 맞아 마땅하다고 판단됩니다. 비단 국어뿐이 아닙니다. 출제된 전 영역에서 난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강합니다.
그런데 평가원이 이례적으로 공개한 ‘2019 수능’의 교육과정 근거를 토대로 출제된 문항을 검토한 결과 초고난도 문제로 평가된 국어 31번과 소위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수학 가형 30번 문제의 경우 고교 교육과정 위반 소지가 다분합니다.
평가원은 국어 31번의 경우 ‘독서와 문법’에서 두 개의 성취기준(그림4 참조)을 근거로 문제를 출제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위의 성취기준에 의하면 국어 31번 문항은 제시문의 내용을 추론하고 제시문에 나타난 필자의 생각을 비판하며 읽을 수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어야 합니다. 해당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상세 내용을 살펴보면 ‘독서와 문법-(18)’번 성취기준은 광고문이나 정치 담화문, 시사평론(시평, 칼럼), 신문 기사 등 필자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글의 의도나 목적, 주제 등을 숨겨 놓는 경우를 추론해 글에 담긴 의도나 숨겨진 주제, 필자의 가치관이나 관점 등을 파악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서와 문법-(19)’번 성취기준은 글의 타당성과 공정성, 제시한 자료의 적절성을 따져 독해의 과정에서 공감하거나 이와는 다른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비판적 독해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림4] 평가원이 밝힌 국어 31번 문제의 교육과정 근거
-자료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그림5] 평가원이 제시한 국어 31번 문제의 교육과정 근거에 해당하는 성취기준 상세내용
-자료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하지만 국어 [27~31]번 문제에 해당하는 제시문은 ‘동서양 우주론’에서 발췌한 지문으로 서양의 경우 천문학 분야의 개혁이 형이상학을 뒤바꾸는 변혁으로 이어진 사례와 중국의 경우 서양에서 유입된 천문 이론이 중국의 전통과 결합되어 어떻게 재해석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제시문을 토대로 평가원이 제시한 성취기준을 만족하는 문제를 출제하려면, 천문 이론에 따른 서양과 중국의 수용의 차이와 관련된 문제가 출제된다든지, 서양의 우주론과 관계된 내용과 중국의 우주론과 관계된 내용에 제시된 학자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출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31번 문항은 평가원이 밝히고 있는 성취기준과는 거리가 멉니다. 31번 문제는 <보기>에 소개된 만유인력을 계산하는 원리와 제시문에 소개된 뉴턴이 만유인력의 실재를 입증하면서 사용한 원리를 바탕으로 ①~⑤번 선지 중에서 만유인력과 관계된 명제가 거짓인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즉 만유인력의 원리를 추론해 그와 관계된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을 요구하는 문제인데, 국어과의 ‘독서와 문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취기준입니다.
[그림6] 초고난도 문제로 불리는 국어 31번 문제
수학 가형 30번 문제도 마찬가지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평가원이 밝힌 것처럼 ‘미적분Ⅱ’에서 삼각함수와 관련된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삼각함수를 활용하여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있다”입니다. 교육과정에서 밝히는 ‘교수·학습 상의 유의점’ 도 분명하게 “삼각함수의 활용에서는 주어진 구간 안에서 해를 구하는 간단한 방정식과 부등식을 다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교육과정에서 언급하고 있는 삼각함수를 활용해 간단한 문제를 푼다는 것의 의미는 삼각함수를 활용해 주어진 구간 안에서 해를 구하는 간단한 방정식과 부등식을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30번 문제의 경우는 주어진 구간이 없어 무한히 많은 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로 교육과정의 수준을 벗어난 문항입니다.
[그림7] 평가원이 밝힌 수학 가형 30번 문제의 교육과정 근거
-자료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그림8] 2019학년도 수능 킬러문항인 수학 가형 30번 문제
또한 평가원은 30번 문항을 푸는데 필요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3개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15개 정도의 성취기준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각각의 성취기준과 관련된 문제를 풀도록 하고 있지 이렇게 10개 넘는 성취기준을 인위적으로 통합하여 만든 문제를 푸는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15개나 되는 성취기준을 인위적으로 조합한 문항은 교육과정의 수준을 벗어난 문항으로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문제를 꼬아 놓으니 EBS 수능 강사도 빠른 속도로 해설을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푸는데 20분 이상이 걸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이러한 고난도 문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합니다.
[표1] 수학 가형 30번 문제에 포함된 교육과정 성취기준
이렇게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벗어난 수능 문제 출제는 학교에서 대비가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하고 수능 대비 사교육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연출해 과도한 입시부담과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을 조장해왔습니다. 고난도 수능이 치러진 이후 불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수능 대비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고교 교사도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지는 실정입니다.
수능이 교육과정을 위반해 고교 교육정상화를 가로막는 문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학교가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학교에서 성실하게 대학입시를 준비해 온 학생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사교육걱정은 고교에서 대비가 불가능한 문제가 출제되어 피해를 입은 학생과 학부모의 사례를 모으고, 평가원이 발표한 ‘2019 수능’의 교육과정 근거를 바탕으로 수능의 교육과정 위반 소지를 밝혀내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려합니다.
■ ‘2019 불수능’이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해 피해를 입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원고를 모집하고, 평가단을 꾸려 수능 문제의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판단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착수할 계획임.
2018.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