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착한소비운동 2. 사회적 기업, 세상을 움직이다(윤선주)
복음과상황] 착한소비운동 2. 사회적 기업, 세상을 움직이다(윤선주)
착한소비운동②] 사회적 기업, 세상을 움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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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 6명 중 1명이 가난하고(1300만 명), 3600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400만 가정이 세 끼를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이보다 세 배는 많은 사람이 ‘먹을거리에 대해 불안정’ 하다), 840만 명의 아동을 포함한 4500만 명이 의료 보험에 들지 못했다. 저렴한 주택이 사라지고 임대료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특히 도시지역에서 무주택 비율이 올라가면서 1400만 가정이 심각한 주택 문제를 겪고 있다. … 전체 가정의 40퍼센트가 가난한 부류에 속할 만큼 낮은 임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정치> 짐 월리스 지음, 291~292쪽.
위 인용문은 제3세계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시장 경제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합중국의 현실이다. 이 수치가 미국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2004년에 보고된 것이니,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실상은 그동안 우리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들이 얼마나 제한되고 가려진 부분이 많았는지, 무엇보다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의 허장성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필자는 여기서 의문 하나를 풀게 된다. ‘공동체적 자본주의’(또는 이타적 자본주의)를 꿈꾸는 ‘착한소비운동’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자들이 판치는 미국 땅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과거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처음 태동하게 된 근대 유럽의 사정과 여러모로 유사한 것 같다. 어쨌든 적어도 시민사회 영역에서 만큼은 미국은 가장 역동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각국의 여러 단체들과 NGO들이 벤치마킹하기에 여념이 없는 착한소비운동의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특히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착한소비운동, 나아가 공동체적 자본주의 실천에 있어 제3섹터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 미국에서 최초로 시도되고 활발히 육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영역과 함께 사회적 경제운동의 또 다른 축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인가? 그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기업의 경영 윤리적 측면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서비스 제공에 관련된 수준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들 스스로가 상정하고 있는 공공의 목적,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잠재 가능성과 예견되는 파급효과는 사회문제의 단편들을 해결해주는 범주를 넘어서,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주나 주주 이익을 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들과는 달리,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곧 영리 활동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고, 발생한 수익으로 사회적 목적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공동체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회적 기업은 수익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공공의 유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경제활동이다. 또한 착한 소비운동의 취지를 충족시켜나갈 착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빈곤의 문제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예언자적 도전과 분배의 정의를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큰 의의가 있다.
지난 3월 11일과 12일, 연세대학교와 KDI에서 개최한 ‘사회적 기업 국제컨퍼런스 2009’(KDI, 컬럼비아대 주최, 연세대, KAIST 후원)는 사회적 기업의 성과와 전망을 확인하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행사였다. 사회적 기업에 관련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는 만큼, 그 열기와 성원은 사뭇 뜨겁고 진지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사회적 기업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 이윤이라는 한 마리 토끼도 잡기 힘든 현실 속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하는 사회적 기업들, 그 이중고 속에서도 그들은 도처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면 과제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는데, 그 주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와 협력 구조의 구축이다. 사회적 기업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창조적 아이디어와 다양한 정보 교류 및 공유가 이루어지게 하고 사업제휴와 협력 또한 원활하게 하여 사회적 기업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최초로 사회적 기업이란 용어를 사용한 아쇼카 재단의 빌 드레이튼 박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수한 인적 인프라를 갖고 있는 한국이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의 허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둘째, 시장경제의 Change maker가 될 사회적 기업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컬럼비아 경영대 사회적 기업센터 소장인 레이몬드 호튼 교수는 사회적 기업의 리더는 고기를 잡아주는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고기를 잡아주는 방법과 기회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고기를 잡는 시스템(시장경제의 시스템)을 바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위해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체계적인 전문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하였다.
셋째, 사회적 기업을 위한 시장 인프라와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들의 성장기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장 인프라를 세우고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 당국자나 경제단체, 특정 NGO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필자는 여기에 교회가 감당해야할 중요한 시대적 사명과 역할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지역 교회들이 착한 소비운동에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기독 신앙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이 땅의 교회들도 사회적 기업들과 착한 소비운동의 서포터가 되어 적극 동참한다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봉착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회적 기업 국제컨퍼런스 2009’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컬럼비아 경영대 학장 글렌 허바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비즈니스 주체들에게 사회적 의식(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온 것이 오늘날과 같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야기시킨 것이다.” 곧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는 탐욕에 눈이 멀어 공동체 정신을 상실한 결과라는 것이다. 아주 적절하고 타당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나’만을 위한 소비가 아닌 ‘우리’를 위한 착한소비,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공동체적 자본주의, 이 모두가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는 다름 아닌 ‘공동체’이다.
윤선주 디딤돌교회 목사, 본지 실행이사 munzer@hanmail.net
원문 출처 :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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