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법률가회(CLF)

깨끗한 총회를 바란다①] "교단총회, 무엇이 문제인가"(조성돈 교수)

뻬뻬로 2013. 9. 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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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실천운동 :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2013.09.4(수)

- 하나님께 영광을 세상에게는 모범을 -
<깨끗한 총회를 바란다> 포럼 발제문을 연재로 소개합니다


기윤실은 9월 장로교단들의 총회를 앞두고 지난 8월 30일(금),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깨끗한 총회를 바란다>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번 포럼을 통해 교단총회가 더 이상 금권선거 파문에 연루되지 않고, 깨끗한 선거와 공정한 회의가 정착되기를 촉구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을 4회에 걸쳐 연재로 소개합니다.


①교단총회 무엇이 문제인가? : 조성돈 교수(실천신대원 목회사회학,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 본부장)
②깨끗한 총회를 위해 공명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예장통합 2012년 공명선거지킴이운영본부 본부장)
③총회 총대(총회원) 구성의 문제점과 개선책 : 심요섭 장로(정읍성광교회, 예장합동 총회 총대)
④깨끗한 총회를 위해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 황광민 목사(석교감리교회, NCCK 교회재정투명성제고위원회 위원장)

2013년_깨끗한_총회를_바란다_자료집(130830).pdf


교단총회, 무엇이 문제인가
 
조성돈 교수〡실천신대원 목회사회학,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교단총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총회장 선거이다. 마치 총회가 임원선출을 위해 개최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안에서 교단의 방향이나 살림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또 그러한 사항들이 결의되겠지만 아무래도 교단을 1년간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다는 데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 있다. 실제적으로 총회현장에서 보면 임원선거가 끝난 뒤에 대의원들이 많이 빠져 나가서 총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총회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총회에서 이렇게 임원선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임원에 대한 기대만은 아닐 것이다. 그 대결양상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총회장이나 부총회장, 또는 다른 임원들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그러한 선거가 있기 위해서 입후보하는 사람들은 몇 년에 걸쳐서 준비를 한다. 장로교의 경우는 노회에서부터 임원선거에 추천받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추천이 되면 그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또는 노회나 교회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대표해서 어느 분이 총회장이 되고, 임원이 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교단의 대표성, 또는 교단의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하고, 노회의 입장에서는 총회 내의 자신들의 입지 등을 고려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총회의 임원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교회를 설득하고, 노회를 설득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고 추천을 받아야 임원선거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힘들여 나간 선거라면 누구라도 당선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생기는 것 같다. 당선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그 최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이왕 나간 것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당선은 되고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제 그것은 한 교단의 총회 선거가 아니라 시장바닥의, 이전투구의 정치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가 지어지고 조직이 동원되다 보니 돈이 오고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총회는 이들의 싸움에 집중하게 된다.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문제는 총회가 임원을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교단의 정책을 결정지어야 하는데 다른 것들이 흐지부지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총회장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총회를 주관하는 사람이고, 1년간의 임기에 그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총회가 몇 년, 아니 몇 십 년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서 토론하고 의결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그것도 총회장 내지는 부총회장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더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편향된 총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단지 정책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 총회가 무엇인가 하는 교회론적인 성찰에서도 짚어야할 부분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 또는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지도자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백성 된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본질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그 가운데 은사를 따라서 설교와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세워지고, 행정을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은사라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선물로 준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은사들, 즉 방언이나 병 고침, 예언이나 통변 등과 같은 임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셨다고 한다. 즉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방언이나 병고침, 예언이나 통변 등과 같은 은사를 교회 가운데 주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시 교회의 직분이었던 사도나 예언자, 또는 교사 역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고전 12:27-28)
이렇게 직분을 은사로 이해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임시로 세우셨다는 것은 단지 개 교회만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총회 역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며 또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로 이해한다면 총회의 임원 역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은사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동시에 은혜이다. 즉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총회를 보면 이 은사를 얻어내기 위해 인간의 모든 노력이 들어간다. 마치 이것을 ‘침노하는 자’의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이러한 오해는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고 질서를 해치는 것이다.

거룩한 교회로서의 총회, 그리고 그 가운데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진 은사로서의 직분에 대한 이해를 바로 세울 때가 된 것 같다. 총회를 더 이상 어느 누구의 총회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어느 원로의 총회장 욕심을 채워주는 현장이 되도록 놔두어도 안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돈이 오가고, 예수님의 뒤가 아니라 자기 뒤로 주의 종들을 줄 세우는 일이 벌어지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총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현재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선거가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이기를 바란다. 누가 더 힘이 세고, 더 많은 세(勢)를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선거가 아니라 다수의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가 기도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를 통해 행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묻고 또 묻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총회장을 뽑고 임원을 선출하는 일이 기도의 결과이기를 바란다. 가장 선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게 된다면 총회의 임원을 뽑는 일이나 총회의 임원이 되는 일이 모두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과거 교회가 박해 가운데 있을 때 감독이 된다는 것은 순교의 순위를 얻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준비하거나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순교의 자리를 얻는 일이 바로 그러한 교회의 직분이었기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은사를 따라서 감독을 세웠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러한 죽음의 자리로 나아갔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되고, 감독이라는 직분이 순교가 아니라 영광만 되게 되었을 때 그 자리는 모두가 얻기를 원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낮은 신분에서는 감히 꿈도 못 꾸게 되고 귀족들의 자리로 변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감독에게는 권력과 돈이 집중된다. 화려한 복장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부터 교회는 타락하게 된다. 지도자에게 화력한 조명이 가고, 그 직분에 권력과 돈이 모이는 순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는 생명력을 잃고 함께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총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람 세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교회로 변하게 된 것은 아닌지, 또 그렇게 세운 지도자에 의해서 교회는 타락하고, 범죄의 공범자가 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 운영 역시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 두려움으로 임하고, 떨림으로 서는 총회이기를 바란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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