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대표의 대입공론화 시민참여단 숙의 참여기(2018. 8.1)
아래 글은 이번 대입 공론화 시민 참여단 2박 3일 토론회에 참여한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대표가 참여해 경험한 소감을 나눈 것입니다. 현장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싸움의 판을 만들어 주고 교사, 학부모, 대학관계자, 교육단체들은 노예 검투사가 되어 피터지게 싸우는 형국...” -7월 27-29일 대입 공론화 위한 491인 시민참여단 발표 및 참관기
대입공론화 최종 숙의 과정에 의제 2팀으로 다녀왔습니다.
출발부터 안타까움으로 시작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가 함께 시민참여단에게 호소하는 신문광고를 내고, 신문을 나누어 주려 천안까지 갔으나 여러 상황들에 막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교육을 지켜보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함이 거부되는 것 같은 원통함을 가지고 대입 공론화 행사에 들어갔습니다. 의제2팀은 1개팀이었지만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고 교육다운 교육을 만들기 위해 헌신해 온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흔히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말하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3:1의 구도 속에서 여론 지형을 반영해서 구성했다고 하는 시민참여단 491명을 만났습니다. 시민참여단은 제가 보기에 진지하게 참여하려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일부 시큰둥한 분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 참여단 시민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숙의 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했고, 경청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날 저녁 참여단끼리 분임 토의하면서 초기 생각을 나눈 결과들을 발표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흔히들 언론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학종을 신뢰할 수 없다’, ‘선발은 공정이 중요하다’와 같은 말들이 주로 나왔습니다. 최초 첫 날 분임토의에서 우리 교육의 미래 비전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됐다면 좀 더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들 때문에, 모든 토의 과정에서 미래와 비전, 가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질문들은 의제 2팀에 유리하다며 빼야 한다는 의제 1과 의제 4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아이들의 삶이 중심이 되는 선택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라는 말이 있었으나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제 2팀의 분위기는 무겁게 시작했습니다. 과연 우리의 이야기들이 시민참여단의 마음에 다른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둘째날 첫 프로그램은 의제별 발표였습니다. 의제 2에서는 수능 정시가 확대되었을 때 예상되는 교실의 모습과 현재 교실의 모습,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왜 지금의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수능은 공정하고 저소득층에 유리하다는 논리의 허구들의 모순을 밝히는 데도 집중했습니다. 또한 경쟁에 허덕이는 아이들, 특히 최상위 성적을 가진 아이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 체제 속에서 더 할 필요가 없는 공부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말씀드리며 이제는 점수 외에 다른 역량도 함께 평가할 수 있는 선발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제1, 의제4는 여전히 학종의 불공정성과 수능 정시 비율의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했고, 의제3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재상에 맞게 선발하기 위해서 학종을 확대해 왔으며, 수능 점수가 높다 해서 더 좋은 인재라 말할 수 없고,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하며 잘 배워온 학생이 대학생활에서나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이유로 수능 정시 비율의 과도한 확대를 반대하였습니다. 첫 날은 의제 1과 의제 4가 내어놓는 논리와 단어들이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진 참여단 마음에 쏙쏙 들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의제 1과 의제 4의 주장들이 내어놓는 여러 데이터들은 분명 사실과 다르거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위원회 내부적으로 약속된 팩트 체크 팀이 없어서 제대로 된 반박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추후에 다른 주제의 공론화가 진행된다 할 때에 공론화위원회는 반드시 팩트체크팀을 운영하여 참여단에게 검증된 자료와 해석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후의 질의응답 시간과 상호토론 시간을 이용하여 의제 1과 의제4가 내어놓는 정보들의 허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종 비리와 같이 일부의 사실을 전체로 과장하는 문제, 학생부 기록에 대한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것으로 호도하여 생기는 불신들, 수능 전형이 일반고에 유리하다와 같은 왜곡된 정보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하는 말의 실상들을 시민참여단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날 저녁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생겼습니다. 수능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 너무 많이 힘들게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능이 5:5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참여단의 질문을 들을 때나, 이와 반대로 의제2팀의 주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했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언제까지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신들도 고통스럽게 겪어온 그 시간들을 왜 다시 후세대에게 남기려고 하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의제 2팀은 한 자리에 모여 참여단의 질문들에 대해 답변할 내용들, 마무리 발언에 내어놓을 이야기들을 함께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무겁고 긴장된 마음으로, 마지막 하나라도 더 해야 할 이야기는 없는지를 생각하며, 발표자들에게 이제 모든 짐을 맡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에 7명은 서로 종교가 다름에도 기도라도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다들 흔쾌히 동의를 하여, 제가 대표 기도를 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보이시고 길을 내시는 주께서 우리 시대 교육에 길을 내어 주시고,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참여단의 마음에 깊이 울려지게 해 주십시오. 이 시대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의 길이 만들어지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길을 찾게 해 주십시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0분의 질의응답 시간. 참여단이 서면으로 우리에게 전달해 준 많은 질문들 중에 선택해서 답을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지방 일반고에서 학종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되는 대학생이 20분을 나누어서 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교사 발표자는 먼저 시민참여단의 마음속에 있는 교육에 대해 원망하고 불신하는 마음, 교사를 믿지 못하는 마음들이 교사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감해 드렸습니다. 오늘 참여단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 우리 역시 같은 책임 안에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이들과 만들어 가고 싶은 교육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0분 정도를 학종을 경험한 대학생이 맡았습니다. 상대평가 체제 속에서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고급스러운 수능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을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문제 푸는 요령을 외우면서 공부하는 현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수능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와 같은 내용들을 참여단에게 차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참여단은 우리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셨고,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여러 시민들이 그 학생을 찾아와 격려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셨습니다.
시민참여단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한양대 입학처장이신 정채찬 교수께서 의제 3안을 대표해서 참여단에게 말씀하신 부분도 많은 공감대를 이루었습니다. 왜 대학이 학종으로 아이들을 뽑는지, 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받은 아이들이 대학에 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데 저에게도, 참여단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오후에 최종 분임토의 결과로 각 의제의 기대효과와 한계, 참여단이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날과는 달리 아이들의 삶을 걱정하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공정한 제도와 투명한 제도의 중요성도 함께 이야기되었습니다.
마지막 발언에서 아름다운 배움 박재원 소장님이 우리 팀의 발표자로 나서서 여러 불신의 요소들이 있지만 여전히 학교교육만이 희망이다, 학교교육을 살려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학교를 믿어주고, 못할 때 또 채찍질하면서 교육을 살리는 길로 나서야 한다, 아이들의 배움이 중요하다와 같은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고, 한양대 정재찬 교수님은 방문객이라는 시를 인용하여 한양대 입학사정관들에게 ‘학생부가 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아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의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입학전형을 실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입학전형을 실시할 것이니 대학에게 맡겨달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후 설문조사의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2팀 내부적으로는 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하고, 무겁게 시작했지만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조금은 기대도 해 봅니다.
2박 3일 내내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을 참여단이 잘 들어주었고, 뒤로 갈수록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시민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격려해 주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의제 2팀 내부의 팀웍도 좋아서 갈등 없이 서로의 장점들을 살리는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었고, 서로의 간절함으로 하나가 되었고, 중간 중간 토론자를 바꾸기도 했던 결정들이 잘 통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론화는 끝났지만 일을 여기까지 일을 끌고 온 교육부와 정부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소리를 들어 정책을 결정하는 취지는 매우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의 주제는 국민들이 바라는 교육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어떤 교육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 교육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같은 교육의 방향성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공론화였다면 역사가 될 만한 중요한 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주제는 오직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선발의 과정을 어떻게 공정하게 할까가 주된 주제였습니다. 선발의 과정 속 규칙 위반자는 잡아 처벌할 수는 있어도, 모든 이에게 공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입학전형이든 유리한 시험이 있고, 불리한 시험이 있으며, 그 시험을 준비하는 환경도 다르며, 소질과 적성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발의 과정을 공론화에 붙이고 나니, 모든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온갖 거짓 정보들이 난무하는 시장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그저 싸움의 판을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로마의 귀족이 되고 교사, 학부모, 대학관계자, 시민단체들은 노예 검투사가 되어 피터지게 싸우게 하고 모두 죽은 싸움과도 같은 장면입니다. 싸울 수도 없고 안 싸울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학부모들의 마음 속 감정은 자녀들이 억울하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울분이었습니다. 반대로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팀들은 자칫 공정한 선발에만 집중하다가 교육 전체의 방향을 뒤틀리게 할 수 있고, 다른 공부가 필요한 아이들을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두의 교육을 제대로 하게 해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결정을 국민들에게 내어 맡기고,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공론화는 역설적으로 '아, 대한민국의 교육부는 더 이상 없어도 되는구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 여당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 미래 사회를 대비할 교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교육부가 못하면 청와대에서라도 해야 하나 교육수석은 존재하지도 않고, 교육 분야를 조율한다는 사회 수석도 눈에 드러나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 여당 내 연구소에서는 교육의 발전 흐름이나 철학, 세계교육의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시 확대가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교육의 문제에서만큼은 국가의 역할은 없었고, 시민들과 이해 당사자들을 극심한 갈등 속으로 내몬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정부에서 교육개혁을 기대하기가 점점 난망해지고 있습니다.
현 교육부에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며 다시 답을 만들어 교육부에 제시할 것입니다. 불행하지만 이 시대, 이 나라를 살아가는 교사들의 숙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학부모 운동도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전국의 학부모들로부터 다시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바람이 불어오게 할 것입니다. 정부의 도움으로 좀 더 쉽게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우리의 오판이었습니다. 불신으로 덮힌 길 위에 다시 신뢰의 길을 만들고, 교육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낼 것입니다. 의제2팀을 지지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시민참여단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8. 8. 1.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 송인수 윤지희 연락: 02-797-4044 대표실 내선번호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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