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도 찬란한 봄과는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작년 봄에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담을 하는 일로 벅찬 날을 보냈지만 올 봄은 많이 우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뿌연 하늘, 숨 쉬기도 힘들었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고 평화로 가는 길은 미세먼지 뒤덮인 하늘 같습니다.
추악한 범죄들은 연일 드러났습니다. ‘버닝썬’ 사태에서 드러난 연예인들의 행태는 역겨웠습니다. 하룻밤에 수천만 원을 탕진하면서 벌이는 지저분한 파티, 불법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는 실태도 충격이었습니다. ‘강간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실감합니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도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어렵게 모습을 드러내고 처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성폭력 사건도 10년 만에 다시 드러났습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고 배우 장자연 씨는 자살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은 교묘하게 수사와 처벌을 피해갔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 국회가 이런 법 하나 못 만들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혐오세력이 제2당을 장악한 상황도 보게 됩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적폐청산의 대상이기도 하고 기독교근본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앞으로 김학의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추궁을 받아야 하고 세월호 사건에 개입했던 일도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연일 반역사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조장하는 5.18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 공격은 이후 세월호 피해자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향할 것이기에 무척이나 우려스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들은 다시 색깔론을 앞세운 정치적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기억해야 하는 4월
이런 상황에서 다시 4월이 다가옵니다. 4월에는 슬프고 아픈 날이 너무도 많습니다. 5년 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매년 4월이면 추모와 기억의 행사가 이어져왔습니다. 올해도 4월 16일을 전후로 전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진상규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책임져야 할 자들은 책임지고 있지 않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올해는 꼭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를 자꾸 뒷전으로 밀어내고 묻으려고 하는 ‘망각세력’만이 있는 게 아니라 참사를 기억하면서 안전한 미래를 만들려는 시민세력이 굳건히 광장을 지키고 있음을 정부나 정치권에, 그리고 주말이면 태극기를 들고 혐오의 행진을 일삼는 무리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재단에서는 17일부터 열릴 특별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여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 창고에 묻혀있던 ‘장기수’들의 서화를 세상에 내보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분단의 비극을 종종 잊고 지냅니다. 그 가운데 장기수들이 있습니다. 장기수들은 신념을 이유로 오랜 세월 독방에서 생활을 했던 이들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그리고 그와 함께 감옥에서 글씨를 배웠던 이명직 선생님, 두 분의 스승이신 한학자 이구영 선생님,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장기수로 사셨던 오병철, 박성준 선생님, 그리고 조작간첩 사건의 석달윤, 이철, 안승억, 이준태 선생님... 이렇게 열 분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각자가 선 자리는 달랐지만 분단체제의 0.75평 감옥에서 마음을 다잡는 방편으로 글씨를 배우고 종이에 써내려갔을 장기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이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시 기간이면 마침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됩니다. 분단의 비극을 넘어 남북관계가 통일로 평화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4월이기를, 그리고 혐오세력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는 4월이기를 바랍니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드림.
서화전 “선 위에 선 :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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