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영역
카드뉴스]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4. 방상연의 이야기
뻬뻬로
2019. 5. 20. 21:02






















석암재단의 비리에 맞서 싸운 마로니에 8인의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2009년 마로니에, 그리고 지금
2009년 6월 4일, 석암재단 생활인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탈시설-자립생활 쟁취를 위한 노숙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마로니에 8인의 62일간의 노숙 농성은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마로니에 8인 한명한명의 이야기가 카드뉴스로 연재됩니다.
*10주년 행사 비용 마련을 위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후원계좌: 농협 301-0168-5108-11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진1]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4 상연의 이야기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시설 밖에는 자유가 있으니까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시설 밖에는 자유가 있으니까
사진2] 어려서 외할아버지네서 자랐는데, 내가 10살 때 외할아버지가 저를 더 돌볼수 없자 아빠가 나를 버렸어요. 버려진 저는 시립아동병원에서 자랐어요.
사진3] 다들 저처럼 고아여서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가족들이 보고 싶고, 무섭고 해서 막 울었어요.
사진4] 시설에서는 밥 먹는 게 가장 싫었어요. 거기서는 조금만 먹어야 해요.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간호사들이 먹여주는 것도 힘들고, 대소변 처리해주는 것도 힘드니까 조금만 먹게 하는 거예요.
사진5]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니까 나무를 먹고 또 어떤 사람은 비닐도 먹어요, 천조각도 먹고, 벽도 막 뜯어서 먹고. 우리가 공식적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날은 1년에 한번, 어린이 날 뿐이었어요.
사진6] 어느 날 석암 원장과 선생님이 찾아와서 ‘너 일로와, 너 일로와’ 하면서 데려갈 애들을 찍었어요. 저도 그렇게 석암에 왔어요. 20살 때에요.
사진7] 석암도 다르지 않았어요. 일어나서 밥 먹고, 똥싸고, 텔레비전 보고, 그러다 자고. 외출도 못했고, 조금만 잘못해도 심한 구박을 받았어요.
사진8]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떤 선생님은 ‘저런 나쁜 놈’, ‘천하에 몹쓸 놈’이라며 욕을 했어요. 미안하다고 빌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고아니까, 내 뒤에는 아무 것도, 아무도 없으니까, 막 대한 거예요. 정말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도 많이 했죠.
사진9] 시설에선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어요?
사진10] 당시 시설에 새로 온 제복만은 앞에선 시설을 개발시키고, 좀 더 좋게 지낼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뒤에서는 직원들 월급을 떼어먹고, 장애인 수당 떼어먹고, 국가에서 나온 돈 떼어먹었죠.
사진11] 외출도 예전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자유는 없었어요. 저는 시설에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접 사람들과 부딪히고 얘기도 해야 이 사회가 뭔지 알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시설에는 그게 없어요.
사진12] 시설의 삶은 사람 사는 게 아니예요. 장애인이 지금처럼 사는 건 밥만 먹고 똥만 사는 기계랑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요.
사진13] 그래서 거기에서 나왔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나 혼자 떠나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사진14] 농성하면서 힘들었던 건 솔직히 이건 아무 것도 아니예요. 시설에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꿔야하기 때문에 나온 거예요.
사진15] 시설에서 나와서는 먹고싶은거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야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하고 만난 것도 좋아요.
사진16] 처음 밖에 나왔을때, 내가 집을 계약했는데 내가 계산을 못해서 고생했어요. 통장을 확인했는데 보증금이 모자라서 형님들한테 일부는 빌리고, 전세자금대출 받아서 겨우 마련했어요. 그런데 은행에서 금치산자 취급을 해서 대출을 안해줬어요.
사진17] 자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여건과 제도, 그리고 돈, 그리고 계산할 수 있는 것. 시설에서는 수나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뭔가 알아야 사람들한테 이야기도 하고 그럴텐데.
사진18] 그리고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가 농성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고, 세상도 돌아다니다 보니까 생각이 넓어져요. 생각도 많아지고, 생각이 되게 좋아지고. 그전에는 내가 밖에 나가면 뭘 알겠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진19] 하지만 이제 밖에 나오고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게 아닌 걸 알게 되고, 나 보다 더 심한 장애인도 나오는 걸 보고 용기도 더 나고, 그래서 점점 더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욕심도 생기고요.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어요. 밖으로 나오라고, 되게 좋다고.
사진20] 올해엔 주거가 안정 됐으면 좋겠고, 정란이랑 건강하게 살고싶어요.
상연은 시설에서 나와 2011년 3월 19일 마로니에공원에서 결혼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