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5. 주기옥의 이야기






















석암재단의 비리에 맞서 싸운 마로니에 8인의
사진1]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5 다섯번째 주기옥의 이야기
“내가 먹고싶은 거 먹고, 누구한테 지시 안 받고, 나도 자유롭게 살고싶어.”
사진2] 가족
사진3]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시고 언니도 동생도 죽고 나만 살아남았어요. 아버지가 사업을하다 망해서 너도 헤어지고, 나도 헤어지고, 식구가 다 헤어졌어요.
사진4] 2009년에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그때 아버지를 찾으려 했지만 못찾을 줄 알았어요. 아버지한테 내가 그랬어요. “아버지, 아버지가 나 버렸어”
사진5]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 “내가 죄가 많다” 아버지는 가끔 나 보고싶다고 전화하는데, 새엄마는 가끔 통화하면 거기서 살다 죽으라고 해요.
사진6] 도망
사진7] 뿔뿔이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교회에서 소개시켜주는 남자랑 대전에서 2년을 살았어요. 남자는 노가다판에서 일했는데 하도 때려서 뱃속에 애도 유산했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일나갔을 때 도망나왔어요.
사진8] 도망나워서 그 겨울에, 그 추운데, 역전으로 갔어요.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를 불러서 자기 집에 가자고 했어요. 여관을 했는데 9년동안 죽도록 일만 했어요. 하루에 밥을 9번하고, 청소 빨래 다 했어요.
사진9] 돈은 안주고 일만 시키더라고요. 한푼도 못받고 일만했는데, 날마다 먹고사는게 너무 고생이었어요. 집도 절도, 의지할 곳도 없고 인생 참 죽고싶었어요.
사진10] 서울역
사진11] 그래서 열차타고 도망쳤어요. 서울역에서 두달을 살았는데, 껌도 팔고 이것저것 장사를 했어요. 근데 88올림픽때 사람들이 와서 데려갔어요.
사진12] 시설
사진13] 대방동 부녀보호소로 갔는데, 두세달 있다가 석암요양원으로 보내졌어요. 여자만 8명 갔는데, 당시 같이 갔던 사람들 중 문씨하고 나만 살아남았어요.
사진14] 석암에 와서는 거기 맡겨진 아이 한명을 키웠어요. 세살부터 내가 키웠는데, 밥먹이고 똥 치우고 손수 기저귀 빨고 했어요.
사진15] 그 아이가 ‘엄마~’ 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그 아이한테 푹 빠졌었어요.
사진16] 석암에서 나오기 전까지, 그 아이 스물 네살까지 씻겨주고 밥먹여주고 내가 다 했어요. 그런데 시설 종사자들이 우리를 찢어 놨어요. 그러다가 막 팍팍 패고 그래서 스물 다섯에 갔어요.
사진17] 원장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안하고 천대한 걸 생각하면, 우리가 떨어진게 그게 너무 서러워요. 그 아이가 많이 맞았다는 것도 너무 서럽고, 그게 가슴에 가장 많이 남아요.
사진18] 소망
사진19] 시설에서 살기 싫었어요. 삶이 너무 지겹고 지옥같았어요. 나도 인간인데 사람들은 다 다니는데 나는 23년동안 내 스스로 한번을 못나오고 쳐박혀 살았어요.
사진20] 우리가 무슨 죄인도 아니고, 왜 못하게 해요? 내가 먹고싶은 것 먹고, 누구한테 지시 안받고, 나도 자유롭게 살고싶었어요.
사진21] 나오니까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맘이 편해요. 나와 사는게 좋아요. 지금 시설에 있는 사람들도 다 나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20090604 탈시설운동의 시작 - 석암투쟁 10주년 기념행사 일정
*6월 4일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8명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한 날입니다.
일정 1] 서울시 장애인인권증진기본계획 전면 수정 환영 및 장애인거주시설폐쇄조례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 6월 4일 오후2시 / 서울시청 정문 앞
일정 2] 탈시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을 위한 0604! 탈탈원정대!
- 6월 4일 오후3시-5시 / 서울시청->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
- 신청링크: http:// bitly.kr/O3rVtP
*참가비 1만원 / 3시 행진 시작 시 기념물품, 생수 제공
*저녁식사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일정 3] 20090604 탈시설 운동의 시작! 석암투쟁 10주년 기념 문화제
- 6월 4일 오후6시-8시 / 마로니에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