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 문자로 받은 주소지를 찾아갔습니다. 낡은 건물 2층. 좁은 복도를 따라 올라가니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장은 먼 곳에서 왔다며 반갑게 맞아줍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 때문인지 조금 있다가 시작하자는 그에게 천천히 일 보시라 말하고는 사무실을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선물용 음료수 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비타민음료, 과일음료 할 것 없이 족히 20박스는 넘어 보였습니다. 아마도 기초생활수급이나 금융 파산과 관련한 상담을 하는 곳에 무언가 부탁하기 민망한 내담자들이 들고 온 선물일 것입니다. 일을 다 마친 그가 음료수를 건네며 “서로 다 아는 처지인데 여기 까지 왔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네, 맞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롭게 활동하는지 뻔히 알지만, 그래도 이야기좀 더 듣고 싶어 찾은 걸요. 빨리 끝내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그를 재촉하며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인터뷰는 몇 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통화 소리만 들어도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다 알만큼, 늦은 저녁까지 그를 찾는 전화가 계속 울려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지역에서 인권운동을 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해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같은 뻔한 질문에 2시간이 넘도록 성의껏 대답해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값진 경험과 고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재단은 인권운동더하기와 함께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사의 일환으로 7월 한 달 동안 19명의 인권활동가를 만났습니다.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겠다고 하면서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단체의 재정 걱정부터 하는 사람들. 인권활동가라고 불리는 것조차 부끄러워하고 활동가라는 명함의 무게를 깊이 성찰하는 사람들. 활동 분야도 다르고, 나이와 성별, 지역도 다르지만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묶인 이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상하고 변변한 수입조차 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겠지요. 여전히 고통의 ‘곁’을 지키며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인권활동가들의 바람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습니다.
故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개최된 활동가 건강권 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이
비마이너에 연재되었습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을 지켰던 활동가들, 거리에서 차별 철폐를 외쳤던 활동가들이 정작 자기 몸과 마음은 아파도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 먹먹했습니다. 그래도 활동가 스스로 자기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음이 다행스러웠습니다. 활동가들의 자기 증언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활동가’의 삶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마음돌봄에는 쉽게 공감해도 인권활동가에게 마음돌봄이 왜 필요한지는 잘 모릅니다. 인권운동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활동가들의 ‘헌신’에 기대 운동이 이어왔지만 활동가들이 존재할 때 운동도 이어갈 수 있듯이 이제 활동가의 삶을 함께 돌봐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는 활동가가 해 오고 있는 역할과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활동입니다. 곁의 곁이 더 두터워질 수 있도록 활동가들을 응원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아프지 않고 잘 쉴 수 있을 때,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주어질 때,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직접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8월 16일,
정민석 사무처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