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을 엄청난 치통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새벽까지 연말 기분 낸다고 체질에도 안 맞는 술을 잔뜩 마신 후였죠. 몰려오는 잠을 왼쪽 두 번째 어금니가 밀어내면서 "야, 일어나서 어떻게 좀 해봐!!" 하고 소리 지르는듯 했습니다.
신정 떡국은 고사하고 진통제에 의지해 하루를 보내고선 출근일 아침 사무실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는 제 어금니에 염증이 심해 더는 살릴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치료 후 수년을 아무 탈 없이 버텨주던 녀석인데... 통증이 온몸을 휘감는 사이 별안간 이별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심정이 여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제 이들은 저의 과거를,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과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치과 가기를 정말 싫어하는데요, 주삿바늘이 무섭고 아프다는 건 누구나 하는 핑계이고 사실은 진료대에 누워서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좀 민망하거든요. 방황하며 제 앞가림 못하던 때의 흔적과 이후에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때우고 다른 것으로 덧씌우려고 애썼던 흔적들까지, 혀끝의 감촉으로도 느껴지니까요. 의사 선생님이치료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할 때면, 여전히 복구되지 않은 과거를 콕콕 끄집어내는 것만 같아서 얼굴이 다 붉어지는 겁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진료대에 누워있자니 속도감 있게 미래를 구상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 이전에 활동하며 느꼈던 실패의 기억들, 활동가 아닌 다른 삶과 갈팡질팡하던 순간들이 어금니 밑에 숨어 있다가 새해특집으로 튀어나옵니다. (아파서) 찔끔 흐른 눈물을 닦는데, 상한 이가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애꿎은 이를 잃고서야 스스로를 바로 볼 용기가 조금 생겼나봅니다.
빠진 이는 임플란트로 채운다지만 지나간 시간은 무엇으로 채울까요. (유산슬이 노래라도 불러주면 좋겠네요...) 텅 비어 보이는 자리를,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올해의 과제처럼 슥 다가옵니다. 그러려면 남은 이들과 앞으로의 시간을 더 잘 보듬으며 살아야겠지요. 그간 병원에 잘 안 갔어도 나를 묵묵히 버텨준 이들에게 감사하면서요. 제가 쥐띠라서 올해 운수대통이라고 하던데, 그저 치통만은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1월 16일,
홍보팀장 야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