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 탓이었을까요. 대구에 도착하니 예전의 활기찬 도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택시는 길게 줄을 섰고 도로는 한산했습니다. 벚꽃과 목련, 개나리가 봄을 알리고 있었지만 그 화려한 꽃들이 더 우울해 보였습니다.
‘장애인 곁의 인권활동가를 지원하는 모금’에 예상보다 호응이 많았습니다. 기부자들이 모아준 금액을 전달하고 응원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무처 활동가 세 명과 함께 하루 동안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니 생색내기나 다름없어 쑥스럽습니다. 대구지역 활동가들이 매일매일 전쟁처럼 후원물품을 정리하고, 자가 격리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하루하루를 살피며, 운전과 배달까지 도맡아서 하느라 주말도 없이 지내는 것에 비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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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거리두기 중인 활동가들
대구에서 인권활동가는 돌봄 노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돌봄을 주는 이들이 무너지면 돌봄을 받는 이들의 삶이 유지되기 힘들지요. 의료진이 코로나에 걸리면 타격이 무척 심할 겁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대구시에는 2천2백 명의 장애인들이 자가격리를 하고 있습니다.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후로 기저 질환이 있는 장애인들은 스스로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활동가로 살아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기력감이 든다.”라고요.
장애인과 그 곁의 활동가들, 이들을 지원하는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은 표나는 데만 지원이 몰린다고도 했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 지원이 몰리고 정말 어려운 곳에는 후원물품과 지원금도 턱없이 부족하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곳이나 HIV/AIDS 감염인을 지원하는 단체는 외면당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늘 사각지대가 존재하지요.
대구의 활동가들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두 번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대구/경북에 대한 혐오와 차별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느껴졌습니다.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일단 경계하고 병원에서도 안 받아주고 신천지 신도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다가 “힘내라 대구 경북” 캠페인이 벌어지고 전국 각지에서 의료진을 비롯한 지원인력이 오고 물품이 속속 답지하는 걸 보면서 감격했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보내온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보고서는 울컥했다고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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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서로 기댐으로
오후 4시간 동안 두 팀으로 나눠서 장애인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포장한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갔지요. 아파트인 곳은 찾기 쉬웠지만, 물어 물어서도 찾기 힘든 곳이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사는 열악한 주거환경의 일단이겠지요.
마주하기에는 서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 전화를 걸어 물품을 문고리에 걸어두겠다고 했는데, 생활지원사들 대부분이 우리가 벨을 누르자마자 문을 열고 나와서 반갑게 받았습니다. 이들이 자리를 비운 집은 문을 열어 물품을 던져주고 나와야 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물품을 주는데 거듭거듭 고맙다고 말하니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에 만난 할머니 한 분은, 우리가 전화를 하니 급한 듯이 끊고는 곧 다시 전화를 해서 “왜 안 보이냐”고 했습니다. 벌써 밖에 나와 기다리셨던 거지요. 그러더니 박카스 두 병과 음료수가 든 비닐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진하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연결과 서로 기댐으로 우리는 인간이기도 한 것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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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코로나19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우려했던 팬데믹(대유행)이 현실이 되어 버린 요즘, 주위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를 성찰하는 움직임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재난수당은 당장의 생계가 위태로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지요.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예전의 IMF 때처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텅 빈 광장에서 말 그대로 ‘아름다운’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우울한 날들이지만, 나로 인해서 다른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신 후원인 여러분 덕분에 다시 기운을 차립니다. 우리가 지금 손을 잡을 수는 없어도, 더욱 깊이 연결되는 4월이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때문에 큰 규모의 추모식은 못해도 여전히 진상 규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월 31일,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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