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평화

[펌] 북한의 개성공단 재협상 제의는 '중심고리' 대화전술

뻬뻬로 2009. 4. 23. 01:28

[펌] 북한의 개성공단 재협상 제의는 '중심고리' 대화전술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교수) 2009-04-22 14:33:16
예상 밖의 대남제의

2009년 4월 21일 개성접촉은 예상 밖이었다. 북한이 억류된 개성공단 직원의 거취문제나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한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개성공단 재계약과 토지·임금 재협상이라는 ‘낮은 수위’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북한이 중대제안이라고 하여 상당히 긴장했는데, 예상보다는 약한 패를 던진 셈이다. 물론 북측의 태도는 강경했고 재협상 카드가 담고 있는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지만 말이다.

북한의 갑작스런 제의를 받고 남한정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처한 입장이다. PSI 참여문제를 두고 외교부와 통일부의 주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 북한의 개성접촉 연락이 왔고 모든 것을 4월 21일 이후로 미루어 놓았다. 그런데 북한의 다소 쌩뚱맞은 제의를 받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북한을 보는 두 시각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어떻게 보는가의 입장이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북한이 이미 개성공단에 대한 기대를 접고 공단을 폐쇄하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금강산에서 관광객을 고의적으로 살해했고 개성공단 직원을 억류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이러한 저의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남사업에 대한 북한군부의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즉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과 후계문제로 정치적 불안정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북한군부가 금강산·개성 등 군사적 요충지를 ‘남조선’에 내어준데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이 어떤 대화정책과 제의를 하든간에 북한은 궁극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얻고 있는 경제적 이익이 크기 때문에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로 인해 외화가 고갈된 상태에서 북한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관광마저 끊김으로써 북한당국은 이제 개성공단의 수익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것도 북한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한이 먼저 관광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단절되었다. 이런 점에서 외화가 시급히 필요한 북한당국이 감정적으로 공단폐쇄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또 군부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사업과 공단개발이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인만큼 어떻게든 공단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처럼 재협상 카드를 내민 이유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번 개성접촉에서 북한은 상당히 합리적 제안을 했다. 그동안 자기들이 남한에 토지임대료·세금·인건비 등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는가를 환기시켰고, 이제는 특혜를 없애고 정상적으로 사업계약을 다시 맺자고 주장했다. 참 엉뚱하기도 하고 황당한 제안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번쯤 이런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봄직한 그런 내용들이다. 북한의 이러한 접근은 정치군사적 전면대결을 선언하던 지난 1월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한 장 한 장씩 꺼내 들면서 상대의 중심을 파고드는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북한을 읽는법: '중심고리' 전법

북한을 읽는 법은 간단하다. 북한사람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복잡하게 보지 않는다. 북한의 간부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학습한다. 주체사상의 교본에 따르면 사물이나 현상은 복잡하게 보일 뿐, 해법은 단순하다고 한다. 어떤 문제이든 해결의 중심고리를 찾고 거기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고 배운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하나의 중심고리를 찾아내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전법이다. 이 중심고리 전술은 북한의 말대로 “맑스-레닌주의자들의 움직일 수 없는 투쟁방식”이며 따라서 “모든 사업에서 중심고리를 튼튼히 틀어쥐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는 것은 승리와 성과의 중요한 담보”로 북한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제해결 방법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이러한 중심고리 전술을 줄곧 사용했다. 2007년 2.13합의로 6자회담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당시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를 풀기 위해 끝까지 고집하여 부시 행정부로부터 해제를 받아 냈다. 또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도 중심고리 전법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2008년 11월 10일 해제의 성과를 얻어 냈다. 이런 북한의 협상태도를 가리켜 서방세계는 ‘벼랑끝전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모든 간부들이 일반적으로 학습하는 북한식 문제해결 방법이다.

북한은 이러한 중심고리 전술을 상대방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테러국지원 명단에서 빼주고 금융제재도 풀어줄 것이라고 보고, 그 진정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중심고리를 사용한다. 북한의 이러한 전술은 대단한 외교력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단순한, 전형적인 북한식 행동방식이다. 아마도 이런 행동방식이 북한 지도부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닐까.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시쳇말로 “단순, 무식, 용감”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대북정책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중심고리' 대화전술

북한의 이번 개성공단 재협상 제의는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중심고리 대화전술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기대는 작년 1년 동안 실망을 넘어 좌절과 분노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대북 강경정책을 구사하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물러나고 적대국들과도 대화를 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 들어서 정책환경이 달라졌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변화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PSI참여를 선언한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그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신정부와의 담판을 앞두고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면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개성제의를 계기로 위기일로에 있는 남북관계를 전환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사업이다. 이번에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받고 있는 남한의 특혜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언급한 내용을 보더라도 공단사업을 통해 남한기업이 얻는 수익은 적지 않다. 북한도 이익이 없는 사업이라면 애초에 군사지역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이번 제안을 북한식 대화제의로 받아들여 진지하게 협상을 추진하기를, 그래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상생의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김병로(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