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법률가회(CLF)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기독법률가회의 입장

뻬뻬로 2016. 11. 12. 03:33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기독법률가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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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우리 기독법률가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가 이 나라의 진정한 대통령이었는가.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인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이었던 것인가.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OECD 국가에서 산다는 자부심도,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빠른 기간 안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긍심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쿠데타가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는 가상의 어느 나라에서나 가능할만한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행위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어. 처음에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둘러싼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 둘씩 보도될 때도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놀라운 기사들은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와 관련된 보도는 그리스도인인 저희에게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최태민씨는 영세교라는 사이비종교의 교주였고, 박대통령은 오랫동안 그러한 최태민씨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순실씨는 최태민씨의 영적 후계자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가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이러한 최순실씨에게 국정을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고 이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더디나마, 때로는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두걸음 뒤로 물러서면서까지, 이 나라가 점점 더 하나님의 뜻과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인식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착각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차례 대국민사과를 하였으나, 그 사과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진정성을 충분히 의심받을 만 했습니다. 검찰이 최순실씨 등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있으나, 국민들은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보다는 대통령의 사과, 관련자들의 신속한 귀국 및 수사 착수, 총리후보 발표 등 일련의 과정의 숨은 기획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국정농단의 덕택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권력의 단맛에 마음껏 취했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기생하거나 그들을 수수방관했던 사람들은 이 순간도 지나갈 것이라고 되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그렇게도 자주 일어나는 이 나라에서는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일도 믿기지 않을만한 속도로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진정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직하게 땀흘리면 성공한다는 거짓 신화를 믿은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이 사건, 민주주의의 원칙을 뿌리채 흔들어버린 이 사건,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믿으라고 윽박질렀던 이 사람들, 수많은 밤낮을 고민한 끝에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민중들을 허깨비로 만들어 버린 이 사람들,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됩니다. 

저희는 법과 인권과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법률가로서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상에 치여 살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독법률가회는 그동안 내부적인 고민과 기도와 모임에 치중하면서 대교회적, 대사회적 발언과 활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지나간 날을 반성하고,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총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다는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지지를 완전히 상실한 마당에 임기를 채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혼란과 고통만 가중할 뿐입니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전략으로 일단 자세를 낮추는 것처럼 한 다음에 끝까지 버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박대통령은 퇴진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퇴진에 따른 급작스런 헌정중단사태를 막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퇴진을 전제로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여 그 내각에게 선거관리 등을 맡기고 조속한 시일 내에 퇴진하는 방법뿐입니다.  

둘째, 검찰과 앞으로 임명될 특별검사는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법률가들도 그 구성원인 한국의 법률영역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검찰의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높지 않으며, 국민들의 그러한 인식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따라서 검찰은 이번에는 뼈를 깎는 각오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아울러 특별검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들을 모두 정의의 법정에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온 국민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있는 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셋째, 정치권은 정략적 판단보다 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각오로 이 사건에 접근하여야 합니다.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도 긴박합니다. 거센 파도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는데 침몰해 가는 한국호에는 선장도, 기관장도, 조타수도 없습니다. 앞으로의 수개월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수십년의 한국사를 좌우할 것입니다. 정치권은 적당히 주고 받음으로써 문제를 덮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해결방안을 논의할 때는 반드시 이 나라의 미래라는 큰 그림을 보면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회개하면서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관련자들 중 기독교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부와 권력에 관심이 많았고, 부와 권력과 높은 지위를 좋은 신앙의 척도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울기보다는 오히려 부당한 권력의 편에 서서 그 권력을 옹호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눈물을 흘리게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회복과 공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기독법률가회부터 이와 같은 회개와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2016. 11. 11.

기독법률가회(CLF) 실행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