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김수영의 시 「그 방을 생각하며」에는 이 구절이 반복됩니다. 조국 교수와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우리가 들었던 촛불과 세계가 찬양해 마지않던 ‘촛불혁명’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방의 주인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착한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혁명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아닌가 하고요.
조국 교수가 촛불정권의 법무부장관으로서 적임자인가를 검증하는 절차는 뒤로 밀어둔 채 그에 대한 온갖 의혹만이 양산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검찰은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일정이 확정된 날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검찰의 정치개입을 보며 조국 교수가 법무부장관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검찰개혁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의 허용 한도 내의 개혁이 되어 버릴까 우려됩니다. 다시 검찰개혁이 무산되는 상황이 그려지는 거지요. 물론 지금 궁지에 몰린 조국 교수가 사퇴하거나 청와대가 후보자를 바꿀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요. 이미 검찰에 약점이 잡혀 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서적인 반대가 커져버린 상황입니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에서 적폐세력이 다시 국회를 장악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국회 정개특위가 선거법 개정안을 자유한국당의 반대 속에 통과시켰습니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과 선거연령을 하향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요. 대법원은 이재용 뇌물사건 판결에서 본래대로 인정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지요. 이재용은 아마도 구속을 면치 못할듯 싶네요.
되어야 할 일은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언젠가는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혁명이 안 된다고 절망할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혁명을 밀고 가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되고야 만다는, 언젠가는 이루고야 만다는 믿음이 주관적인 게 아니라 합리적 이성 위에 올라서 있는 판단이라면 밀고 가야겠지요.
선물을 양보하는 마음
요즘 한 해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에서 다섯 번째 진행하는 추석선물 나눔입니다. 매달 활동비 백만 원도 안 되는 인권활동가들을 응원하자, 추석 선물 하나 살 때 하나 더 사서 활동가들에게 전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을 때 이게 가능할까 고민도 했었지요. 그리고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다"는 인권활동가들이 '가오’ 상하지 않으면서 선물을 받을까 걱정도 했었고요. 그런데 후원자들은 기꺼이 선물과 후원금을 모았고, 활동가들은 그 선물을 받아들며 환한 웃음을 보였어요. 서로 나누는 마음이, 활동에 지친 활동가들을 웃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추석 선물 나눔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명절 기분이 나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추석이면 선물 나눔 캠페인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즉각 후원금이 모이고 있지요. 그런데 선물 신청을 안 하는 단체가 몇 군데 있었어요.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자기들은 선물을 받기로 한 데가 있다고 다른 활동가들에게 양보를 하더라고요. 인권현안을 논의할 때는 까칠하게 원칙을 내세우는 인권활동가들이지만 이런 따뜻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갖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나누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 여러분들이 마련해주신 선물을 들고 인권활동가들을 찾아갈 겁니다.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인권현안으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할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환한 웃음으로 맞아줄 활동가들을 만나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지방까지 모두 배달을 가고 싶지만 못 가는 게 아쉽지요. 인권 현장을 지키고, 현안에 대응하느라 지친 인권활동가들을 응원하는 마음 잘 전달하겠습니다.
가끔 하늘을 보세요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늘을 봤어요. 서늘한 바람이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들었지요. 짙푸른 하늘이 정말 높았어요. 어느새 가을이 훌쩍 와 버렸음을 알 수 있겠더군요. 지난여름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쉼의 시간을 갖고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30년 지기들과 지리산에도 올랐습니다. 지리산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풍경이 힘든 마음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쉼이 필요하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지난달에는 6년 반을 같이 일했던 난새 활동가가 재단을 그만두었어요. 힘든 일이 거푸 있다 보니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런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나누지도 못했던 게 미안했습니다. 어려움 속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잘 알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했는데, 내가 힘들다고 그러지를 못한 게 후회가 되네요.
올해 남은 하반기에 재단은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5년 만에 진행한 전국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합니다. 우리 재단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활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해서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9월 5일에는 조효제 교수님을 모시고 <기후위기는 어떻게 삶을 위협하는가>를 주제로 특강이 열려요. 녹색연합과 공동으로 하는데, 환경과 인권이 처음으로 같이 만나는 새로운 시도지요. 다른 영역의 주제들과 만나는 시도도 앞으로 계속하려고 합니다.
올 가을, 가끔 푸른 하늘을 보면서 마음 잘 추슬러 가겠습니다. 추석 선물 나눔을 할 수 있게 마음을 모아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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