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학살은 화양시내에 남아 있던 군인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이후, 화양은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신만 우글대는 정글이 되었다.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으로 숨어 지냈다.
소설가 정유정 씨가 『28』이란 제목의 장편소설을 낸 건 2013년이었습니다. 원인 모르게 갑자기 눈이 새빨개지고 사흘 안에 죽어나가는 무서운 전염병이 ‘화양’이라는 서울 인근 도시에 번집니다.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개로부터 옮긴다는 부정확한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그러자 화양 시내의 개란 개는 모두 도살됩니다. 군대까지 동원된 학살이었죠. 그런데도 전염병은 더욱 창궐합니다. 당국은 29만 명이 거주하는 화양시를 봉쇄합니다. 봉쇄된 화양시는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정부가 취한 조치는 원인 모를 전염병이 서울로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를 죽였지만, 나중에는 정부 당국에 항의하며 평화시위에 나선 화양 시민들을 학살하기에 이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
화양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특종, 단독을 좇는 언론에 의해서 확인되지 않은 기사가 나가고, 그것이 혼란을 증폭시킵니다. 사실 확인이나 차분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혼란을 부추기는 언론.
바로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에 관한 언론보도와 SNS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그렇습니다. 중국인 또는 중국 동포에 대한 혐오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이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기 중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눈만 마주쳐도 감염된다’라거나 중국산 김치가 위험하다거나 환자가 다녀간 곳은 위험하다는 식의 소문들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공포 분위기에는 혐오 바이러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이 혐오 바이러스일지 모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겨레 1월 29일자 신승근 논설위원의 칼럼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통점은 동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조류독감은 사람에게 전염된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돼지를, 조류를 살처분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만약 위의 소설처럼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개나 고양이가 병균의 숙주 역할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연대를
더워진 지구 곳곳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주의 산불은 6개월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산불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야 겨우 멈추고 말았지요. 먼 대륙의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더군요. 올 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그게 도리어 걱정입니다. 기후위기가 본격화되는 건 아닌가 해서이지요.
저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일종의 경고음으로 들립니다. 자연을 무한 착취하고 파괴하는 산업체계, 공장식 축산이 가져오는 파멸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이지 않을까요? 과학의 힘에 대한 맹신, 최신식 의학기술에 대한 맹신이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요? 이런 때 혐오와 배제가 아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연대하고 상생하는 꿈을 그려보면 어떨까요?
새해 덕담을 나누는 글이면 더 좋았겠지만 호주 산불보다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또 다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기 전에 혐오와 배제가 낳는 위험성을 한번 같이 생각해보고자 이런 우울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건강하시길 기원하는 저의 마음은 한결같다는 것 아시죠? 경자년 새해,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