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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누구나 한 번도 내려 보지 못한 역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뻬뻬로 2007. 3. 18. 14:13

누구나 한 번도 내려 보지 못한 역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찾아도 찾아도 못 찾았던 네잎 클로버를 내가 지금 손쉽게 발견하여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예전의 토기풀이 아니고, 예전의 풀밭이 아니다. 과거이 풀밭은 장례식처럼 지나가버리고, 미래의 풀밭은 달갑지 않게 찾아오는 손님과 같은 확실한 죽음뿐이니.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풀 같은 것. 들에 핀 들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 이미 사라져 그 서 있던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꿈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최인호의 <이상한 사람들> 중에서


그 역을 매일 지나치지만 한 번 내려 보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언제나 지나친다. 하지만내가 그곳에 내려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 시간이 멈추거나 전동차가 마침 그 역에서 고장이 나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이 이미 그 역을 수백 번 이상 지나쳤다.
그렇게 누구나 한 번도 내려 보지 못한 역을 하나쯤 가지고 있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 역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처럼 굳어져버린다. 그리고는 그 역에 내리면 내가 모르는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 일어나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이따금 해보곤 한다.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이들은 무엇에 홀린 듯 문득 그 역에 내려 낯선 길을 끝까지 걸어서 사라져버리기도 할 것이다.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