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법률가회(CLF)

CLF소식(1116-37 연합컨퍼런스) 11. 22.(목) 공동체의 두 관계(김종철)

뻬뻬로 2007. 11. 20. 11:15

CLF소식(1116-37 연합컨퍼런스) 11. 22.(목) 공동체의 두 관계(김종철)

 

11월 네째주 기독변호사회-clf.or.kr 뉴스레터

11. 22. CLF 목요 정기 모임-공동체의 두 관계(김종철)

이 번주 목요일에는 "공동체의 두 관계"라는 제목으로 1)기독교 공동체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외부와의 관계), 2)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는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 좋은지(내부에서의 관계)에 대해 김종철 회원이 발제한 후에 발제한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면서 CLF의 공동체로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일시: 11월 22일(목) 오후 7시
장소: 법무법인 소 명

1.[학생-위원회] You know better than I(조혜신)
2.[연구분과] 로스쿨 체제하의 기독법학교육의 진로(이국운)
2.[생활분과] 회원 소식

1. [학생-위원회]You know better than I(법기독 컨퍼런스-조혜신)

연대 모의 법정에서 2007. 11. 16. 금요일에 열린 2007. 법기독컨퍼런스가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3명의 발제자가 발표를 하였는데, 주명수 변호사님께서 전문성과 영성의 양날개를 갖춘 법률가가 되라고 권면하셨고, 박찬훈 교수님은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독인이 될 것을 말씀 하셨고, 조혜신 선생님께서는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래에는 조혜신 선생님(서울대학교 경제법 박사과정, 시장경제연구소 연구원)의 발표문인 You know better than I를 싣습니다.

You know better than I

이 자리는 제가 설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처음 이 자리에 서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나를 다루어 오신 것을 그냥 덮어두고 가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법고시를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법고시를 접고 다른 길을 가게 된 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영광 받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눈에 번쩍 뜨이는 영광은 아니지만, 나를 꺾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주도권을 철저히 관철시켜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드러내시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런데 너무 빨리 왔다 싶어 두려웠습니다. 제가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전 지금 여러 가지가 불확실한 상태에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있는 그대로, 너에게 행한 내 이야기를 하렴. 그 자리에 있을 네 후배들에게 너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분명히 있으시다는 확신에, 그간의 기도일기들을 다시 꺼내 보며 여러분께 드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You know better than I. 지금부터 제가 드릴 말씀의 주제로 이 보다 더 좋은 표현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노래를 아시거나, 혹은 저처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을 바로 ‘하나님의 주 되심’, 그리고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왔으며,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단단히 움키고 있던 제게, ‘You know better than I’라는 고백은 그토록 갖기 원했던 몇 가지 것들을 망연히 내려 놓는 쓰디 쓴 포기와 실패를 의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야기 하나. 내가 살아온 날들.

일단, 저는 모태신앙이자 목사님 딸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미션스쿨에서 다닌 온실 속 화초의 샘플 중의 샘플입니다. 이 타이틀만 봐도 앞으로 이어질 제 삶의 이야기는, 온실 속 화초에 찬바람 쐬어서 건강한 나무로 키우는 과정이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혹한기를 견뎠다거나 돌풍이나 태풍을 견뎌냈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온실 속 화초에게 온실 밖 공기는 그 자체로 찬바람이었고, 그 찬바람은 참 차가웠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줄곧 제 꿈은 (이 자리의 누구라도 한 번쯤은 꿈꾸었을 만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법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습니다. 사회 과목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법학도 비슷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난한 자 편에 서는 착한 법조인의 그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만해도 저는 제가 영광 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구별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동일시했습니다.
연세대 법대에 들어간 첫 해에 민법총칙을 들으면서, 실망했고 좌절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죠. ‘권리’의 개념에 관한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너 댓 가지의 학설을 두고 뭐가 진리일까를 고민하다가 지쳐버리고 나서는 법학에 대한 순진한 호기심은 바로 접어버렸습니다. 그 중에 진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법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달려가는 경기장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대학생활과 나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행복하지 않았고, 한 해 동안 휴학한 후에 복학해서는, 연세대 법기독 지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성취와 인정의 욕심으로부터 순수한 마음을 지키기로 헌신한 법학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법기독 연합활동을 통하여 ‘법학도’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반갑게 맞아들이게 되었고, 현장에서 신실한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여러 어른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실 속에서 소박하게 빛나는 법조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법학 공부는 만만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지독한 지루함과 난해함에 절망스러웠고, 내 아둔함에 눈물만 났습니다. 또 그 엄청난 양에는 질식할 지경이었죠. 전공 공부가 심화되면서, 입 안에 자갈을 한 웅큼 집어 넣어 씹는 고통과 동시에, 그 정교한 체계와 치밀한 논리에 조금씩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법학에 진리는 없었지만, 진리의 형상을 모방한 체계와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말과 글과 생각이 그 체계와 논리를 닮아 가면서, ‘학문’이라는 길로 법학에 이르고, 또 ‘법학’이라는 길로 학문에 이르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에 오롯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자가 될 생각은, 적어도 법대를 졸업할 때 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다지 매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법고시의 행렬에 들어서고 나니 그 행렬을 이탈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법고시는 해야 하고, 하고 싶지만, 도무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내 삶에는 애초부터 기약되어 있지 않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법고시보다는 학교 공부가 꾸준히 쌓여가는 것에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죠. 그 때 용기 있게 한 발을 디뎌보라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신림동에 입성합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둔 때입니다.
신림동에서 약 6개월을 보내는 동안, 극단적인 두 가지 행복과 불행을 맛보았습니다. 불행은, 내가 법학의 기본도 깨우치지 못한 형편없는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었고, 행복은,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때 처음으로 성경 전체를 통독했고, 그 때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말씀의 달콤함을 알았고, 기도를 통해 천국으로 비상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느라 예배당 한 구석에서 두 세 시간을 순간처럼 흘려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림동은 내게 참으로 외로운 곳이었지만, 그 외로움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고스란히 드려졌습니다. 다가올 1차 시험은 안중에 없었고, 난생 처음 기본서를 보는 것 마냥 한 자 한 자 짚어가면서 그렇게 가을과 겨울을 났습니다. 그 무렵 저는 그 후 10년, 아니 평생을 좌우하게 될 만남의 예고편을 보게 됩니다. 고시촌 예수축제에서 권오승 교수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그 분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경제질서’라는 비전이 저를 후려쳤습니다. 대학원 진학과 깊은 공부에 대한 간절함이 깊어졌지만, 그렇다고 권오승 교수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사법고시 1차 선택과목으로 공부하고 있던 경제법이 몹시 싫었거든요.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 경제법은 전공하지 않겠지만, 권오승 교수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1학기에 복학을 하여 마지막 졸업학기를 보내면서, 내가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연습과목이었던 그 학기에서, (참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치 시야가 한 꺼풀 벗겨진 것도 같고, 법 공부하는 IQ가 적어도 20-30은 상승한 것 같기도 하고, 내 속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법대에서 교수님들의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수업 시간마다 전에 없이 많은 칭찬을 들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내 안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라고 누군가 마구마구 응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으며 법대를 졸업하고, 저는 다시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필합격을 마음에 새기고. 그런데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제 마음에서는 대학원을 가고 싶은 마음이 1차 시험에 대한 의지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연세대 모교 도서관에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중에, 마음 속에서 불타듯 일어나는 간절함을 안고 기도실로 향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대학원에 꼭 보내달라고. 구구절절 이유를 나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린아이 마냥 꼭 가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또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평안히 가라” 그 당시에는 이게 어느 주소에 등장하는 말씀인지 몰랐습니다만, 나중에 보니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 혈루증 걸린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더군요. 제 간절함이 그 여인의 간절함과 닮아 있었나 봅니다. 당시 11월 초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입학시험이 있었는데, 필기고사 3일 전에 조건부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원자 중 일부를 미리 선발해서 필기고사를 면제해 주는 것이었는데, 타 대학 출신인 저는 그냥 그런 게 있는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시험 공부를 하던 중 조건부 합격자 명단에 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강아지마냥) 마루를 뱅글뱅글 돌며 자축의 세레모니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일을 쉽게 만들어 주시다니. (사법고시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색하시면서. 사법고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수가 떨어졌거든요) 그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이렇게 편하게 쉽게 거저 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사법고시 1차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에,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대학원 합격의 기쁨이 1차 합격의 전조인 것만 같아서,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 스타일이 아닌 벼락치기 방법을 구사해 가며 꾸역꾸역 머리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채점을 하니 합격과 불합격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애매한 점수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3월 1일부터 발표날 때까지 2차 과목들 교과서를 정말 열심히 (동차라도 할 것처럼) 읽었습니다. 그런데 평균 2점이라는 (별로 근사하지 않은 점수 차이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아주 평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1년 동안 면벽한 수도승처럼 독서실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대학원은 ‘믿음으로’ 휴학을 했지요. 매일 8시간 정도를 (주일 빼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 닦듯이 인내하고 견디면서, 스스로에게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감동하셨을 거야 라면서.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독서실 앞에서 엄마와 안부 전화를 하는 중에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법고시 정말 붙을 줄 알고) “나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변호사가 되고 싶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저는 그 날 제 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꿈을 드리면 예뻐서라도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하세요.
그런데 12월에 전범위 모의고사를 시작하면서 저는 경악했습니다. 1년 전보다 점수가 10점 이상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합격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수였습니다. 처음에는 문제 푸는 연습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다가, 점수가 오르기는커녕, 점점 더 떨어지기만 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1년 동안 고시공부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중요한 거, 시험에 나올 거 가리지 않고 미련하게 책만 파고 있었던 것이지요. 단권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게, 재미있겠다 싶은 책은 수험용이 아니라도 뿌듯하게 읽어 내렸습니다. 그러니 막판에 점수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요. 1월이 되었고, 구정을 앞둔 어느 날, 독서실에 앉아서 2시간 동안이나 한 장도 넘어가지 않는 민법 요약서에 머리를 처 박고 저는 눈물만 떨구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처럼 한 글자도 한 단어도 눈에 들어오질 않고, 머리 속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단어들이 날아와서 머리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식은 땀이 나고, 어지럽고, 메스껍고. 버티다 못해 짐을 싸서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 엄마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엄마, 나 시험 못 볼 거 같아’ 당황하신 부모님은 시험 앞에 두고 긴장한 탓이라며 달래주셨습니다. 저도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집에서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신림동에서 방을 빼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제 상태는 집에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넋 놓고 있는 저를 보며, 나중에는 부모님께서 막 야단을 치셨습니다. 의지가 약하다고. 극복해야 한다고. 맞는 말씀이지만 이미 저는 저를 완전히 놓아버린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는 뭐라고 기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냥 ‘내년 시험에는 이러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월 한 달을 집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집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는 줄 알았겠지만, 저는 그 때 잠자고 TV 보고 그랬습니다. ‘절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제가 사법고시 1차 시험 앞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무릎 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만약 사법고시에 끝내 실패하게 된다면, 그래서 변호사가 될 수 없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어떠한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취직한다면? 가정주부가 된다면? 대학원에 간다면? 무엇보다도 창피했고, 자존심 상했고,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도 벌써 동기들 중 합격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나를 끊임 없이 견주며 늦었다고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내 삶에 대한 모든 계획은 사법고시 합격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구멍이 생긴다면, 그 다음은 하나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 삶을 징검다리로 생각했습니다. 돌을 쫙 늘어 놓고, 하나씩 하나씩 밟아 가는 것이죠. 만약 중간에 하나라도 비면, 더 이상 전진은 불가능합니다) 그 한 달 동안 집에서 지내면서 부모님과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유난히 자아가 강한 제가 그 특유의 방어기제를 발휘한 탓인지, 한 달 동안 편안히 잘 쉬었습니다. 시험 날이 다가오자,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최후 통첩을 하셨고, 시험장에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던 고집은 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로 호소하시는데 어쩔 수 없더군요. 그 때 저는 평균 70이라는 과분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합격 커트라인은 84점 정도?) 당시 제가 겪은 일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요? 수험공부 전략의 실패? 의지박약? 일시적인 정신공황? 다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못 하게 막으셨어. 방해하신 거야’ 라고. 하나님께서 좀 억울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는 딱 그거였습니다. 대낮에 눈 크게 뜨고 열심히 길을 가다가 철벽에 쾅 하고 부딪힌 사람, 무슨 잘못입니까? 실은 그 일에 대해 저 자신을 탓하기에는, 제가 너무 약하고 지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온갖 비난과 질책으로부터 저를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대학원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이라고 해도,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곳은 아는 이 하나 없이 개밥에 도토리 신세 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두려움의 땅이었습니다. 정작 고시와는 상관없는 고시공부를 하면서 상법에 대한 관심이 생기던 참인지라, 관련 과목들을 신청해 놓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던 차에, 법기독 연합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서울대 친구를 만났습니다. 갈 곳 없는 제게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권오승 교수님 방에 방순이 누나가 연수원을 가게 되어 자리가 비었는데, 말씀 드려볼 수는 있지만, 대신 그 자리에 가면 경제법을 전공해야 한다고. 그래서 저는 그랬습니다. ‘권오승 교수님은 좋지만, 경제법은 싫어. 난 상법 전공할래’ 그런데 상법 조교를 신청했다가 거부를 당하고, 저는 좀 의기소침해 졌습니다. 하나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지더군요. 그래서 기드온 마냥 하나님의 싸인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이 ‘권오승 교수님 bible study’의 첫 모임이 있는 금요일이었는데, 목요일 저녁에 신림동 교회에 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만약 내일 성경공부 모임에서 교수님을 만나, 교수님이 먼저 ‘내 방에 오너라’ 라고 하시면, 제가 경제법을 전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알겠습니다’. 그 날 아침은 폭설이 내렸습니다. 1 미터도 넘게 눈이 쏟아지는 바람에 그 성경공부 모임에는 교수님 가까이 있는 학생들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 빼고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싸인을 구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그 날 아침에 내린 폭설을 보시고는, ‘이런 날씨에 누가 오겠어? 하나님, 오늘 오는 학생은 하나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놀랍지요? 저는 저를 소개하며 저의 심령이 가난한 처지를 말씀 드렸고, 모임을 마치는 기도가 끝나는 동시에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혜신이 잠깐 내 연구실로 오너라’ 이것 저것을 물으신 후에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너에게 법학을 공부하게 하셨겠니?’ 그러면서 법학으로 아시아를 섬기는 비전에 대해 도전하셨습니다. ‘네가 한 공부를 가지고 아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니?’ 그러시면서 연구실 조교 자리가 비어 있으니 와서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구한 싸인은 이렇게 정확하게 응답되었고, 저는 군말 없이 경제법 전공자가 되었습니다. 경제법은 싫었지만. (사법고시 경제법과 진짜 경제법은 정말 다릅니다. 지금 저는 경제법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석사 1학기 3월 첫 주부터 권오승 교수님 방순이 조교가 되었고, 저는 신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열흘쯤 지났을까요? 교수님께서 줄곧 저를 관찰하시다가, 지나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공부가 재미있지?” “네.” “그럼 공부해.” 이 말은 사법고시를 접으라는 뜻이었습니다. “학자가 되기 원한다면, 사법시험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하지만 할 거면 빨리 붙고 안 할 거면 빨리 접어라. 공부가 길어지면 안 된다.” 갑작스런 이 말이 저에게는 마치 복음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고민에 빠졌고, 내가 사법고시를 해야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제가 사법고시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간추려 냈습니다. 첫째, 한 사람의 성인으로써, 나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 중 가장 멋진 직업으로써 변호사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 때는 이미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 되리라 결심이 서고 있던 때였는데) 학자가 되는데 있어서 변호사로서의 실무경험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저는 하나님께 그 답을 구했습니다. 제가 시험을 접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답을 얻어야만 했던 것이죠.
며칠이 안 되어 연구실 창 밖을 내다보던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씹고 또 씹어보았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나의 두 가지 이유에 대한 답이 또렷이 새겨져 있더군요. 생계에 대한 염려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리라는 것. 그리고 학자가 되는데 있어 변호사로서의 실무경험이 필요한지 여부는,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 나보다 더 잘. 이렇게 하여 그 말씀 앞에, 사법고시를 내려 놓았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순종한 그 순간부터 제 삶에서 현실이 되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또렷한 증거로써,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2004년 3월부터 취업을 한 2007년 11월 직전까지, 단 한 달도 생활비가 끊긴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입학하던 학기 외에는 등록금을 저나 부모님이 낸 적이 없습니다. 한 학기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대학원생의 삶이지만,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배짱이 생겨서 등록기간이 코 앞이어도 조금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법학이라는 학문의 너른 지경을 보여주시면서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법학은 법 실무가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준거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체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질서를 가지고 운행하시며, 체계를 가지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 눈을 흉내 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바로 법학이라는 틀입니다. 이 틀 안에서 하나님 나라 실현의 대망을 위한 구체적인 작전을 세우고 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서, 저는 실무의 경험이라는 것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필요하고 유익합니다만, 평생을 상아탑에 갇혀 있는 것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4 년은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공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공급하셨습니다. 제가 떠 올리는 의문들에 적합한 책, 강의, 만남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답을 주셨고, 또 그 다음 의문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과외 선생님이셨고, 네비게이션이셨습니다. 그 재미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시작된 대학원 생활에서 저는 교수님께 가장 사랑 받고 기대 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저의 인격과 내면의 견고함, 그리고 온전한 헌신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분주하면서도 행복했던 1학기를 보내고 나자, 2학기부터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부대끼는 인간관계의 문제들이었죠. 그 부대낌에서 저는 깎여나가고 부서져 나갔습니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저는 말과 행동과 생각이 여러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었고, 그것은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요셉이 이랬을까요?)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마저도 오해와 실망이 생기고, 급기야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저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이 절망을 실감나게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2004년 사법고시를 한 달 앞두고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을 때의 절망과 비슷한 듯도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너의 스승은 권교수가 아니라, 바로 나다” 라고 하시면서, 제 삶의 주도권에 대해 분명히 하셨습니다. 제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제 삶의 잘 되고 안 되는 것에 대한 결정권을 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넘겨 줬을 때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인정에 대해서도 연연하지 않게 될 때까지 그 혹독한 과정을 여러 번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만 3년 정도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3년이 지나고 나서, 저는 은밀한 곳에 감춰졌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은 자가,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빵 속에 든 누룩이, 땅 속에 심겨진 겨자씨가, 숨을 죽이고 그 비밀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이렇게 감추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요원들입니다) 교수님께서 학교에 안 계시기도 하거니와, 얼마 전에는 제가 전공을 바꿨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저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소문을 들으면서, ‘내가 전공을 바꿀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경제법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그 때 문득 떠올랐던 것이, 몇 년 전에 교수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시집의 제목이었습니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제게 주시며, 특별히 제목 때문에 저를 위해 고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어’ 라는 뜻이었죠. 그렇습니다. 경제법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경제질서는 제가 갈아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이야기 둘. 내가 꿈 꾸는 것들.

꿈은 어떻게 올까요?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다른 대답을 하겠습니다만, 제 꿈은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꺼내셨습니다’. 이 세 단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꺼내셨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꿈을 내 안에서 ‘꺼내드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꾸어 본 적 없는 어떤 꿈이 어느 날 홀연히 제 손에 쥐어집니다. 그런데 그 꿈이 낯 설지가 않습니다. 마치 태어나기 전에 거닐었던 하늘나라 어느 동산을 어렴풋이 추억하듯이, 그 꿈은 제게 그렇게 편안하고 쉽고, 마치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잘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그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내가 노력하는 것에 비해 훨씬 좋은 결과들을 보게 되고, 마치 순풍에 돛을 달고 바다 위를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제게 그렇게 주어진 꿈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꿈은 공부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 없는 꿈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혀 성경적 근거도 신학적 근거도 없습니다만, 저는 하늘나라에 학교가 있다고 믿습니다. (혹자는 천국에 가서도 공부를 해야 하냐고 기겁을 하더군요. 걱정 마십시오. 의무교육은 아닐 겁니다)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다니엘입니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C.S.Lewis나 프랜시스 쉐퍼 같은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께서 계실 겁니다. 제가 하나님 나라의 학자로서 저를 드렸을 때, 저는 그 학교의 신입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 12장 3절)
다니엘은 이렇게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학자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혜와 지식은 이렇게 밤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도 같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지식과 지혜에 가 닿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라도 좋으니, 보고 싶습니다. 이런 제 간절한 소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진정으로 보기 원하느냐? 정말 원하느냐? 기도하면서 공부해라. 물어라. 알려줄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이끌리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하나님께서 그 꿈의 실체를 제게 완전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아시아법 연구소와 통일정책연구회. 우리 나라를 아시아를 섬기는 자로 부르셨다는 것과, 북한과 아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매우 급하고 절박하다는 것. 저와 제가 이룰 가정을 선교의 전초기지로 세우고자 하신다는 것. 마지막 때에 사람들을 세속의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구할 사상의 방주를 만드는 것. 이것들이 제가 가진 단서의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제가 왜 변호사가 아니라 법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왜 경제법을 전공하게 되었는지, 왜 유학 가는 길은 열어주시지 않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박사학위 논문은 어떤 주제로 쓸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떼는 이 한 걸음이 저를 향한 궁극적인 부르심과 저 멀리 있는 꿈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과정도 순서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삶에 대한 주도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저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한 발자국 앞에만 보여주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제게 소원을 심겨 주시지만, 그 소원이 성령의 일하심을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저는 그것을 그저 눈으로 좇아가며 따라가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의 진짜 의미를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게는 일종의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제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왠지 내가 그걸 너무나 원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제가 갖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학자로의 부르심은, 나를 거기에 꼭 붙들어 매 놓지 않으면, 어느새 삶에 대한 염려와 근심에 풍덩 빠져 버립니다. 이 길에서 떠나 나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 동안의 (일종의) '희생' 에서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제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가 틈만 나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법고시를 포기 당한 것이 제게는 특별한 희생인 것이죠. 보상이 있어야 하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을 수단의 자리에 두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 동기와 방법과 목적에 대해 끊임 없이 검증하시고 철저히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무엇인가 꼭 갖고 싶은 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제 눈 앞에서 치워버리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태도가 순전해 질 때까지 흔들어 대시는 거죠.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결같고 지속적이셨습니다. 그러나 정직히 들여다보건대, 저는 그 부르심이 사실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말씀해 주셔도 잊어버린 척, 못 들은 척, 내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부르심은 제게 여전히 가난해 보입니다. 매말라 보이고 고독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 내 시선을 붙들어 매어 놓기가 영 억지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순종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헌신하는 일은 원래 그렇게 달콤한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 내가 아파하는 것을 힘껏 나누지 않겠느냐. 아시아와 북한을 향한, 이 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절박하도록 급하고 쓰라린 마음을 나누어 갖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원래 근본이 되는 헌신과 소명에는 어찌할 수 없는 '뻐근함'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야기 셋. 후배들에게 남기는 부탁

말씀을 마무리 지으며 흔치 않은 기회인 이 자리를 빌어 몇 가지 부탁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부탁들이 제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부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성의 제자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았고, 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성의 제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분 전체를 향한 것은 아닙니다만,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학자로서’ 지성의 제자로 부름 받았을 몇 분들을 위해 도전합니다.
지성의 제자는 그 지식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 지식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총체적인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 그리고 지식에 끼워진 불순물들을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즐기는 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학문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다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을 붙들지 않으면 자칫 나의 학문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섬세하신 스승이 되신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나의 관점을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들어 올려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 사상과 관념, 철학, 그리고 역사,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세계관의 변혁이 필요합니다. 초점이 잡힌 말씀연구와 묵상, 나를 쪼개는 깊은 기도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 가운데에서도 나의 영성이 잠잠해지지 않고, 더 왕성하게 운동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다니엘의 반열에 설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저는 성경 ‘공부’와 독서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묵상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전공서적을 읽는 치열함과 열심 이상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자기 전공에 대해 쏟는 지성의 열정을 말씀에 대해 쏟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더불어 세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치열한 독서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게 인생과 사회에 대해서 고민해 왔습니다. 그들의 고민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그것에 대해 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적인 헌신과 탁월함을 세상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다니엘을 자랑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모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지성의 주인 되신 하나님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또한 답이 없어 보이는 것에도 끊임 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 답해야 하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내게 주어져 있음을 보게 될 것을 믿습니다. 99년도에 법기독 연합리더 활동을 하면서 CLF 워크샵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한 기억이 납니다. “기독교적 법철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걸 배우고 싶습니다. 변호사님들께서 그걸 좀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질문에 대해 다들 끄덕끄덕 공감을 표하셨지만, 결국 그것을 배우지는 못 했습니다. 올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기독교적 법철학이라는 돌뿌리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가 던졌던 질문이 8년 만에 제게 되돌아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감히 제가 그 문제에 답해보고자 합니다. 그런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한 대가이겠지요. 사실은 몹시 감격스럽습니다. 그렇게 8년이 걸렸습니다. 답을 손에 얻기 까지는 그 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요.
제도적 죄악에 대한 주목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법대를 다닐 때에는, 법조인의 소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질문을 덮었습니다. ‘법조인의 소명’이란 책도 읽어 봤지만, 정직하게 번 만큼 세금 내고, 의뢰인들에게 진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 법조인의 소명이라면, 굳이 ‘소명’이라고 할 것 없습니다. 법조인의 ‘윤리’라고 하면 충분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장의 법조인들은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악하다’ 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린다면, 혹은 동의할 수 없다면, 성경을 읽으면서 직접 답을 구해 보십시오. 마음이 급하시면 사복음서만 읽어 보셔도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악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북쪽으로 가고 있는 배 위에서 아무리 남쪽을 향해 걸어봐야, 내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니콜라스 월트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우리에게 받은 복을 세어 보는 것 이상을, 우리의 내면을 가꾸는 것 이상을, 우리의 사상을 개혁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씨름하는 목표가 결국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몸부림치라고 요구한다는 것을 말이다.
크리스챤 법조인은 성경에서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이 세상의 제도적 죄악을 직시하고,그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민족과 이 땅, 이 세상과 역사 운운 하는 것이 너무 거창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저도 아직은 그런 느낌을 완전히 떨치지 못합니다. 그렇게 거시적인 전망을 가지고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하나님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역사'와 '민족'에 이르기까지 넓히지 못하는 것은 罪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시선을 갖는 것은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갖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어느 한 줄에서도 한 자아 안에 갇혀 있는 하나님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너무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싸우고 있는 제도적 악은 바로 맘몬주의, 즉 물질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으로 지목하신 것은 바로 재물이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과 경쟁하는 강력한 우상은 바로 재물입니다. 저는 그 우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경제체제와 자본주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 것을 말입니다. 연구 끝에 이것이 악하다,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저는 제 삶을 걸고 이것에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제가 법학을 공부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것은 진리의 형상을 모방한 체계와 논리로서 매우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공부하는 여러분도 바로 이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맺으며

마지막으로 ‘온전한 헌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래 전에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하게 헌신한 자가 그리 많지 않다.”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온전한 헌신의 모습은 다 다르겠습니다만, 제게 요구하시는 온전한 헌신을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무엇에든, 누구에게든 매이지 않기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을 창조하였고, 모든 지혜의 원천이 되시며, 그 어떠한 경계와 구획도 넘어서 존재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그 지혜와 지식에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의 샘을 깊이 파고, 기도 가운데 온전히 잠겨야 한다고. 쉽게 말하자면, 학자로서 성공하기 위한 온갖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 미련해야 하고 무지해야 하고, 철저히 무기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제가 ‘너 바보 같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온전한 헌신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겠죠.  
그런데 온전하게 헌신된 자들에게 주신 약속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짜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장 17-18절)
악한 자는, 저와 여러분을, 즉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공동체를 묶고 있는, 이 땅과 북한을 묶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또한 새 방언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새 방언은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새 언어를 준비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그들의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뱀을 집어 올리라고 하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사탄을 결박할 능력이 있습니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차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이 세상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이고, 이 땅에서 이루어진 하늘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이어진다고 말이죠. 우리는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고,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보았습니다. 저를 밟고 싶어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로 보냄을 받은 양이 아닙니까. 이리는 이리입니다. 무섭습니다. 잡아 먹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일이 있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는 것에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사랑으로, 포용으로 넉넉히 그들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넘어설 수 없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영혼들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저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된다면,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 하나님께서 지금은 또 저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못 살고 있는 것 같으면 이 메일을 보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2. [연구분과]로스쿨체제하의 기독법학교육의 진로

2007. 11. 17. 15:30 기독교학문학회에서 한동대 이국운 교수님이 '로스쿨체제하의 기독법학교육의 진로'라는 주제로 발표하셨는데, 김종철 회원이 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아래에 이국운 교수님의 발제문을 싣습니다.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
-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모색 -

李 國 運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법학부 교수, 헌법/법사회학)

1. 문제의 제기

 2007년 7월 3일 로스쿨법 통과 이후 법학교육계 전반에 격변이 발생하고 있다. 로스쿨 총입학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의 갈등이 2000명 수준에서 가까스로 봉합되자 로스쿨 유치를 위한 각 대학의 물밑 경쟁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국에서 약 40여개의 대학이 로스쿨 유치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정을 서둘러 현 정부의 임기 내에 개별 로스쿨의 설립인가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하려는 계획이다. 전국을 5개 고등법원 관할구역으로 나누어 개별 로스쿨을 인가하겠다는 법학교육위원회의 방침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시중의 예측에 따르면 2009년 3월 약 20-25개의 로스쿨이 출범할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로스쿨제도의 시행이라는 법학교육의 체제 변화에 대응하여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동대학교의 상황을 중심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평가와 전망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외부의 관심 및 기대와는 달리 2007년 11월 현재 한동대학교는 로스쿨 유치에 관하여 어떠한 구체적인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한동대학교, 특히 그 내부의 법학부는 로스쿨 유치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70여개의 영세법학부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고사(枯死)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글에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한다는 일반적인 목적 이외에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생존전략을 마련한다는 구체적인 목적 또한 부여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 유치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로스쿨체제 하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내세웠던 ‘크리스천 로스쿨’의 비전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그저 10년가량 존속했던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그 졸업생들의 기억 속에나 남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로스쿨체제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설정에 의외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먼저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후술하듯이,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리버럴 아츠로서의 법학(Law as Liberal Arts in Christian Perspective)을 교육하는 전무후무한 특성화 법학부로 변신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중 하나인 앰허스트 칼리지(Amherst College)의 법학부(Law, Jurisprudence & Social Thought)를 모델 삼아 기존 법학부를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목적에 맞는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유일무이한 미국법 로스쿨로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Handong International Law School)과의 관련을 체계화시킬 경우에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생존전략은 로스쿨체제 하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모색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부과정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면적으로 시도하는 이 선택이 다음 네 가지의 측면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제도적 강화를 이끌어내는데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① 기독 대학들의 경우, 특히 로스쿨을 유치하지 않는 대학의 법학부를 포기하지 말고 도리어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향적으로 강화하는 것.
 ② 기독 법학교수들의 경우, 2009년 3월 이후 출범할 20-25개의 한국법 로스쿨 내부에 기독 법학교수 및 기독 법학도를 중심으로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게 하는 것.
 ③ 기독 법률가운동의 경우, 현재의 기성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로스쿨 졸업자들까지를 체계적으로 재교육할 수 있는 법률가계속교육시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에서 선점하는 것.
 ④ 이상의 전 주체가 힘을 모아 장기적으로 로스쿨체제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될 법학교수 인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틀 속에서 양성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

2. 로스쿨체제와 기독교적 법학교육

(1)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모색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위기냐 기회냐를 논하기에 앞서 현실을 살피는 것이 바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현재 대한민국의 법학교육 현장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존재하기나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감히 ‘그렇다’는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국공립대학이나 일반 사립대학의 법학부는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기독교대학들에 설치된 법학부에서조차 기독교적 법학교육이라고 일컬을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통 사법시험과목 일색인 교과과정, 강의와 연습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교육방법, 교과서위주의 법학교육에 집착하는 교수, 소위 신림동 고시촌 방식의 사법시험노하우를 습득하는데 관심을 빼앗긴 학생. 이와 같은 법학부의 구성요소들은 기독교대학의 법학부에도 거의 다를 것이 없다.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으로 대표되는 종래의 법학교육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한 마디로 ‘취미생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교수의 차원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자신의 전공연구와 관련하여 어쩌다 한 번씩 제기되곤 하는 골치 아픈 주제일 뿐이다. 헌법분야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원칙, 민법분야의 교회재산분쟁, 형법분야의 낙태죄, 안락사, 사형제도 폐지논란 등이 단골메뉴들이다. 최근에는 사립학교법이나 목회자들의 면세혜택문제가 거론되면서 행정법분야도 일부 관련이 되기 시작했다 그 외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일부 독실한 기독교인 법학자들의 사회참여의 부산물이거나 일부 기초법학전공자들의 전문적인 연구관심(법신학, 교회법 등)의 표현일 뿐이다.
 교수의 차원이 이렇다면 학생의 차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고시공부의 짬을 내서 모이는 법대기독학생회 활동, 즉 일종의 써클 활동일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법을 연구하고 교육한다는 것은 몇몇 열성분자들의 개인적 탐구를 넘어서기 어렵다.  국공립대학이건, 일반 사립대학이건, 심지어 기독교대학의 법학부이건 이런 사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
 법대기독학생회에 모였던 학생들 중 사법시험의 관문을 넘은 사람들은 다시 사법연수원에서 신우회로 모인다. 그리고 이들의 모임에서 시작하여 기독변호사회도 모이고, 법원과 검찰 내부의 기독인들도 모이며, 그들 중 일부는 기독 법률가들로 구성된 기독 로펌을 구성하거나 심지어 ‘법을 통한 선교’(mission through law)를 모토로 선교단체를 조직하기도 한다. 이에 자극받아 기독 법학교수들도 한두 번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임이 결집되어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자는 결의로 발전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수많은 기독교대학들 가운데 단 한 군데서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로스쿨을 설립하겠다는 기획은 제시된 바 없다.
 이상과 같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은 로스쿨체제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측면에서 로스쿨체제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논의에 필요한 수준에서라도 로스쿨체제의 골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로스쿨체제의 골격 - 논의에 필요한 수준에서
 로스쿨은 3년제의 전문대학원이다. 로스쿨체제의 출범 이후 과도기적으로 존속하는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결국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변호사시험의 응시자격 부여된다. 로스쿨에서 수여하는 학위는 전문법학석사(J.D.)이며 학술박사학위과정을 포함하여 기타 학술학위과정을 설치할 수 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로스쿨 설치대학에는 법학부를 둘 수 없다. 그밖에 타대학 및 비법학전공자를 각 신입생의 1/3 이상 선발해야 한다. 로스쿨의 입학여부는 학부성적 법학적성시험 외국어 능력 로스쿨 자체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로스쿨은 변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로스쿨은 어디까지나 소송기술을 갖춘 중인(中人)으로서의 변호사를 양성할 뿐인 것이다.
 로스쿨체제 이후 판사, 검사, 법학자, 기타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들은 로스쿨이 배출하는 변호사들 가운데서 선발된다. 그 절차는 아직 제대로 결정되지 않았으나, 이들이 통상의 변호사들보다 고도의 인격성, 세계관적 식견 및 광범위한 법적 분쟁해결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들은 소송기술을 넘어서는 최종적 분쟁해결자, 최종적 정책결정자로서의 능력을 갖춘 중인(重人)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특수한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이 수련과정은 로스쿨 이전에도 필요하고 로스쿨 이후에도 필요하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로스쿨을 설치하는 대학에는 법학부를 폐지한다. 따라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기타 수도권의 주요 사립대학들과 지방의 주요 국립대학들은 로스쿨을 설치함과 동시에 법학부를 폐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전국 20-25개 예상)

(3) 기회의 구조 - 中人이 아니라 重人의 배움터!
 결국 2007년부터 로스쿨 진학을 목적하는 많은 대학 신입생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로스쿨을 설치하는 전국 20-25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그 중 어느 곳에서도 법학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문적인 변호사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학생들은 변호사가 된 이후를 생각해서 전공을 정할 수도 있겠지만, 판사, 검사, 법학자, 기타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등은 법학인접전공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학부과정에서부터 법학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스쿨지원자들을 유치하려는 학부 차원의 전략은 크게 두 종류로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심리학 등을 엮어서 일종의 pre-law program을 마련하는 것이다. 로스쿨이 설치되는 20-25개의 메이저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여기에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법학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학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로스쿨체제가 안정되기 전까지의 약 10년간 이와 같은 pre-law program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으로는 하위직 공무원시험 등을 대비하는 프로그램이면서 이를 동시에 pre-law program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주로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하는 대학들에서 종래의 법학부가 경찰법행정학과 등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로스쿨입학생들을 배출하는 데는 결정적인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상위 20-25개 메이저 대학들이 실질적으로 로스쿨입학가능학생들을 선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일반론은 결국 두 종류의 커다란 대학들 사이에 하나의 작은 틈새시장을 탄생시킨다. 한편에는 로스쿨이 설치되는 20-25개의 메이저 대학들이 있다. 그 곳에는 법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각종 인접학문들 속에서 변죽이나 울릴 뿐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pre-law program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기존 법학부를 하위직 공무원시험 대비반으로 바꾼 뒤, 그것이 로스쿨진학에도 유리할 수 있다고 둘러대는 주변부 대학들이 있다. 로스쿨 졸업자들(변호사)이 늘어나서 하위 공무원직에까지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 주변부 대학의 pre-law program은 곧바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커다란 대학들 사이에 하나의 작은 틈새시장이 있다. 그것은 학부에서 장래에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직업교육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변호사직업을 뛰어넘어 공직으로서의 법률가직을 목표로 삼는 학생들에게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 법과 법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로스쿨 진학과정에서 이들은 적어도 로스쿨 교수진들로부터 가장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만이 법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로스쿨에 진학한 ‘준비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中人이 아니라 重人을 기르는 큰 배움터, 곧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이라는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상과 같은 기회의 구조 속에서 포착될 수 있다.

(4) 기독교적 법학교육에 관한 함의
 서양의 오랜 전통 속에서 법은 원래 인문교양의 핵심이었다. 초기의 대학들에서 법학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계몽적 과학주의의 대두와 함께 법의 과학화가 진척되고, 근대의 국민국가들이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을 독점한 뒤 국가적 차원에서 법률가를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법은 급격히 사법관료 또는 변호사들이 수행하는 국가법의 소송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로스쿨체제는 소송기술의 전수과정으로서의 전문법학교육을 대학원차원으로 빼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로부터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의 자리가 복권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은 결국 세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에 입각하여 적극적으로 법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법시험체제 및 국가적 실정법의 울타리 속에 갇혀야만 했던 종래의 법적 사유가 그 지평을 뛰어 넘어, 다양한 세계관적 기반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경우에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법적 사유를 진척시킬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법, 법제도, 법적 현실에 관한 기독교적 반성 및 성찰이 보다 전면적으로 시도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라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한동대학교의 법학부의 재구성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1) 기초법학중심주의
 그렇다면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가져야 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로스쿨에 진학해서 배울 내용을 미리 다 가르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로스쿨에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들, 그러나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알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재음미되어야만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 글은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매우 학술적인 교육적 관점을 고려해 보고자 한다. 실정법학과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평가절하 되었으며, 앞으로의 로스쿨체제에서 더욱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기초법학 및 기초법학교육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은 일차적으로 기초법학의 영역에서부터 확보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또한 기초법학중심주의는 장차 로스쿨체제가 상징하게 될 실정법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안티테제를 정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점에서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기초법학중심주의를 그 교육적 기초로 삼아야만 한다.
 주지하듯 법학의 학문성에 관하여는 오래 전부터 저주에 가까운 부정(否定)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과의 관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법 자체의 한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입법자의 세 마디 말이면 도서관에 있는 법서는 휴지가 된다’는 키르히만의 독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실정법이 이처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본질적으로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면, 그 해석에 복무하는 실정법학의 학문적 독자성은 부인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나아가 그 실정법의 교육은 당파적인 가치체계를 전수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학문적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이러한 공격에 대하여 실정법학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소극적인 방어로서 학문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의를 다루는 지혜로서, 삶을 이끄는 실행의 덕으로서, 일종의 행위예술로서 법과 법학을 고양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획들이다. 둘째는 적극적인 방어로서 학문의 차원을 지키면서 실정법학의 당파성을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방식으로 실정법학에 대한 다양한 성찰(reflection)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이런 작업들이다.
 기초법학의 존재근거는 말할 것도 없이 학문의 독자성이 존재한다는 신념아래 후자, 즉 적극적인 방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실정법학의 학문적 무가치성을 긍정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그 주장을 회피하려는 태도로부터 기초법학을 정초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런 점에서 기초법학은 근본적으로 실정법과 실정법학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긍정은 정직한 긍정이다. 실정법이 제도화된 편견이며, 실정법학이 제도화된 편견의 체계적인 정당화라는 사실을 기초법학은 그 출발점에서 받아들인다. 다만, 그러한 당파성이 학문적 성찰의 대상에서 실정법 또는 법을 축출해야 할 근거가 된다는 키르히만의 저주를 기초법학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법학이 출발하는 곳은 언제나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후술하듯이,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방식으로 실정법학의 한계를 확인하고 극복해 보려는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의 복잡한 의구심이다. 오로지 자신의 법적 판단에 학문적 의미를 부여하길 원하는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만이 기초법학을 위한 장정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실정법학에 복무하고 있거나 그 복무를 목적하는 모든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은 누구나 기초법학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비록 그 자격을 현실화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더라도, 기초법학이 실정법학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실정법학의 최대한은 그 저변에 깔린 편견을 제도적으로 순화하는 작업까지이다. 제도화된 편견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실정법학 내부에서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독점금지법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경제법학의 경우, 독점금지조치의 효율화와 공정화를 타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독점 그 자체의 부당성이나 독점금지 그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법학(독점금지법학) 자체의 근본전제를 무너뜨리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도전에 관하여 실정법학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은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등장하는 기초법학은 그러한 불손한 도전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독점금지법의 한정된 전제를 넘어 더욱 보편적인 가설을 내세우고 그 정당성을 증명해보자고 그 도전자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특별히 실정법(학)만능주의의 유혹으로부터 법률가를 구출함에 있어서 기초법학이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앞서의 실정법(학)무용론이 실정법(학) 자체의 권력성에 눈을 감게 하는 것이라면, 실정법(학)만능주의는 실정법을 다루는 법률가 또는 법학자의 권력성에 눈을 감게 하는 것이다. 전자에 관하여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법학은 후자에 관해서도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법률가 또는 법학자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실정법(학)만능주의가 매력적이라는 점을 기초법학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매력이 근본적으로 유혹이며,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정법(학)만능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처럼 기초법학은 실정법(학)무용론과 실정법(학)만능주의의 두 가지 위험에서 실정법(학)과 법률가 또는 법학자를 동시에 구원한다. 기초법학은 이 두 종류의 독재가능성에 관한 독특한 방지책인 것이다. 방지책을 작동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역시 교육이다. 따라서 기초법학교육의 고유한 사명은 실정법전문가로서의 법률가(법학자)에게 실정법학의 가치와 한계에 대한 균형감각을 배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에 소홀할 경우, 두 종류의 독재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쉽게 표현하자면, 기초법학교육은 전문적 법률가에게 일반적 교양인의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소재인 실정법과 실정법학의 권력성, 나아가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권력성을 의심하고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초법학교육은, 법률가의 인격적 덕성을 함양한다는 차원에서, 실정법학교육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가결의 학문적 요청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법학교육은 영속적인 것이며, 시대정신과의 호흡 속에 실정법(학)의 전제를 의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것은 현재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초법학교육은 교양법학교육이며, 비판법학교육이며, 근거지움의 법학교육인 동시에 시대정신의 법학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법률가(법학자)의 정체성과 윤리와 세계관이 태어나며 전수되는 유일한 지반이다.

(2) 기초법학적 사유의 구성요소
 현재 대한민국의 정형화된 법학교육 커리큘럼 속에는 이미 다양한 기초법학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다. 법철학, 법제사(한국, 서양, 동양, 로마), 법사상사, 법사회학, 법경제학, 법과 정치, 영미법, 독일법, 비교법, 그밖에 여러 강독과목들이 그러하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기초법학과목들이 어떤 유기적인 연결을 가지고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 과목들을 담당하는 교수들 역시 기초법학 전체를 통관하는 관점과 이해를 가지기보다는 좁은 의미의 전공분야에 집중하기 십상이다. 사실 사법시험의 합격을 목표하는 대부분의 법학도들에게 기초법학과목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환영받지 못하는 과목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조율 없이 산발적으로 전달되는 기초법학지식들은 앞서 말한 고유한 사명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기초법학과목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도모함에 있어서, 먼저 고려할 것은 입문과목의 중요성이다. 예컨대, 미국 로스쿨에서 신입생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법률자료조사방법론 및 법률문장론’(Legal Research and Writing)은 이후의 법학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있도록 돕는 선수과목이다. 미국적 맥락에서 실정법학이 어떤 형태의 논증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 필요한 법적 자료들의 구성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이 과목의 목적이다. 기초법학교육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입문적 선수과목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은 법학도들로 하여금 일찍부터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익숙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것과 구분되는 기초법학교육의 독자성에 관하여 인식과 관심의 여지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소위 기본 3법(헌법, 민법, 형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자마자 법학도들이 급격하게 기초법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까닭은 결코 실정법의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실정법학이 전개되는 방식과 논리가 일상적 언어관행은 물론 다른 학문들의 경우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실정법학의 이러한 체계적인 논리는 법학도들에게 하루바삐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와 같은 강제효과는 소송절차를 포함하여 기본 3법의 학습이 마무리되는 대략 2년여의 기간 동안 법학도들을 일반인에서 법률가로 변화시키는데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동시에 법률가로서의 기득권에 익숙해지는 단초로도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실 법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그것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에 대하여 일방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러한 일방적인 우위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 실정법의 내용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대한 익숙함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지식의 범위가 아니라 논리의 친근성이 실정법학과 관련하여 법학도와 일반인 사이에 권력의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대부분의 법과대학에서 법학입문, 법학개론, 법률문장론 등으로 개설되어 있는 입문적 선수과목은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만 한다. 첫째는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를 효과적으로 선보임으로써 실정법학교육의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논리의 장점과 단점을 드러냄으로써 실정법학의 가치와 한계를 부각시키고, 이러한 성찰을 이끄는 기초법학적 사고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근거지우는 것이다. 이 양자의 요청을 공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실정법학교육과 기초법학교육이 균형을 잃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주지하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법학교육 현장에서는 전자의 압도와 후자의 위축으로 이런 불균형이 뿌리 깊게 구조화되고 있다.
 입문적 선수과목이 제대로 진행되었을 경우, 기초법학교육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기초법학과목들의 유기적인 연결이다. 법철학과 법제사, 그리고 법사회학 등이 각각의 우월성을 내세워 일종의 할거주의적 풍토를 조성한다면, 기초법학교육은 결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결국 기초법학적 사고의 구성요소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다음의 네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실정법학에 대한 입체적 성찰이다.
 첫째는 역사적 반성이다. 이것은 법학도 앞에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현재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작업이다. 법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미래을 배제한 채 현재에만 집착하는 태도인 실정법(학)만능주의는 상당히 제어될 수 있다. 시간 축을 따라 연원을 추적하고 추이를 추급하다보면, 그 역사 속에서 계승된 전통과 그렇지 못한 전통이 혼재하고 있으며, 계승된 전통도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경우 법학도는 누구에 의하여 어떤 이유로 그와 같은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정당했는지를 묻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총체적 문화사이자 심성사의 일부로서 법의 역사를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는 사회적 반성이다. 이것은 법학도 앞에서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를 당위적 명령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로 이해하는 작업이다. 그와 같은 사회적 사실이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했으며, 또 어떠한 결과를 배태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검토하는 것이 여기서의 핵심이다. 이 검토는 입장에 따라 ‘권력’의 문제에 집중하거나(법정치학), ‘효용’의 문제에 집중하거나(법경제학), ‘문화’의 문제에 집중하는(법인류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수행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법에 관한 사회적 반성은 특정한 가치와의 관련 속에서 사회적 사실들 간의 상호관계를 해명한다. 이러한 해명은 곧바로 실정법(학)과 그것을 해석하는 법률가(법학자)가 사회적 인과관계의 연쇄 가운데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법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를 다양한 관점에서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이론적 반성이다. 이것은 시간축과 공간축의 기초법학적 반성이 산출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역사적 반성, 사회적 반성은 현존하는 실정법(학)이 내세우는 이론적 전제들에 대항하여, 그것을 의심케 하는 수많은 다른 사례들을 확보해 준다. 이론적 반성은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 비교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비교의 기준이 ‘이론’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장하는 새로운 이론은 실정법(학)을 이끄는 기성의 이론을 검증하며, 그것을 보완하거나 혹은 대체하면서 실정법(학) 자체의 이론적 재구성을 정당하게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법이론의 역사를 장식해 온 법실증주의와 자연법이론과 사회학적 법이론의 삼자정립(三者鼎立)은 이와 같은 논쟁의 구도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넷째는 윤리적 반성이다. 이것은 실정법(학)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반성이 도달하는 최종의 목적지이자, 그러한 반성을 추동시켰던 최초의 출발점이다. 결국 근본적인 물음은 ‘법학도 앞에서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에 대하여 그 법학도가 윤리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실정법(학)에 대한 윤리적 반성은 필수적인 요청이다. 제도화된 편견으로서의 실정법(학)은 동시에 권력의 표현이므로, 그것에 대한 윤리적 반성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제도화된 편견적 권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방식의 기초법학적 반성은 윤리적 반성에 의하여 완성된다. 다시 말해, 기초법학교육이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이유의 태반은 이와 같은 윤리적 완성에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초법학적 사고는 이러한 네 가지 반성의 차원을 끊임없이 왕복한다. 윤리적 반성은 다시 이론적 반성을 자극하며, 그것은 또 다시 사회적 반성과 역사적 반성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끈질긴 왕복과정을 통하여 기초법학적 사고는 실정법(학)에 표현된 시대정신과의 창조적 불화를 배양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법의 세계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탄생시킨다. 그 결과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표현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하나는 실정법(학)의 전체에 합당한 정당성(reasonable legitimacy)을 부여하는 특정한 법이론(jurisprudence)을 산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관련하여 실정법(학)의 해석에 복무하는 법률가(법학자)들의 윤리적 기준으로서 법윤리(legal ethics)를 산출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탄생된 법이론과 법윤리는 결코 폐쇄적인 것이 아니며, 계속적인 기초법학적 반성의 대상이자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학교육의 갱신을 목적하는 개혁운동이 정초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개혁운동과 더불어 기초법학교육은 법률가의 인격적 덕성을 함양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기초법학중심주의에 기독교적 관점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이제 명확하다. 이상과 같은 기초법학교육에 기독교적 관점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의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청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에 관한 토론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새로운 교육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그 내부에서 이루어질 앞으로의 작업결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다만 그 작업과정에서 항상 상기되어야 할 다음의 네 가지 지침을 거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첫째,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한동대학교 전체의 교육과정,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수행되는 교양교육과정과 밀접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연계는 위에서 언급한 기초법학교육의 네 가지 구성요소, 즉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반성의 모든 차원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투영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둘째, 이 과정에서 기독교적 관점은 반드시 개방된 구조 속에서 이해되고 제시되어야 한다. 기독교에 관한 특정한 입장만을 종파주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대의에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방법론적으로는 예컨대 리처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이념형적 접근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현대사회 속에서 법의 핵심적 위상을 생각할 때,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공공신학의 성과들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 및 내용에 연결시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독교적 관점은 그에 관한 단순한 이해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 속에서 관철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한 전제로서 최소한의 실정법(학)의 학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 속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관철시키는 것에 관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방법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예로는 법적 난문(Hard cases)들에 대한 도전, 고전적인 법률문헌들에 대한 독해, 법적 에세이의 작성, 모의재판형식의 법적 논증 경연, 법률선교현장의 답사 및 각종 활동참여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반드시 국민국가 단위의 법시스템이 현격하게 약화되는 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만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기초법학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이 그 다음 단계의 실정법교육으로서 한국법 로스쿨교육만이 아니라 미국법 로스쿨을 비롯한 국제적 차원의 실정법교육을 감안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외국어 강의나 로스쿨진학의 진로상담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4. 성공의 조건들

(1)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은 인문교양으로서의 법을 사랑하고 법학 그 자체를 즐기는 크리스천 법학자들에 의해서 가장 잘 운영될 수 있다. 현재의 법제도를 솜씨 있게 소개할 수 있으면서,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윤리적, 비교적, 문화적, 이론적 접근을 넘나들며 구사할 수 있는 학문적 유연성을 갖춘 사람, 나아가 자신의 학문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끊임없이 성찰할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총명한 학생들과 함께 뒹구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는 크리스천 법학자들을 찾아내어 합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크리스천 법학자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국내외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유수한 크리스천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졸업하고 법무박사학위(J.D.)를 받은 뒤 다시 연관분야의 학술박사(Ph.D)를 획득한 인재들을 교수요원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을 리크루트 하기 위하여 인적 연결망을 풀가동해야만 할 것이다.

(2) 누가 배워야 하는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에는 장래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기독 법학도들이 모여야 한다. 적어도 이들에게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은 가장 유력한 학부과정의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어차피 로스쿨로 진학할 예정이라면, 예를 들어 S대의 경제학과, K대의 정치외교학과, Y대의 경영학과 등에 진학하는 것보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에 진학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적어도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자리 잡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로스쿨체제로의 전환이 예고된 올해 입시부터 곧바로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을 선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 한동대학교의 예비신입생들에 대한 대응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나중에 로스쿨에 진학할 건데, 나를 위해서 한동대학교는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수험생의 질문에 ‘글쎄, 우리는 로스쿨을 추진하지 않으니까 결국 법학부는 좀 어려워질 거고...잘 모르겠지만...총장님은 무슨 계획이 있으신 것 같더라...’는 식으로 답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만 한다.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가 되겠다면 본인에게 맞는 관심분야를 학부 때부터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런 전공들은 한동대학교에도 다수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본인이 크리스천으로서 변호사자격을 갖춘 뒤 결국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 원한다면, 한동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오로지 한동대학교 법학부에만 존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5. 맺음말 - 몇 가지 제언을 중심으로

 만약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이 한 해 35명 정도의 재학생을 가진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① 25명은 국내 로스쿨에 10명은 외국 로스쿨(주로 미국과 중국)에 진학한다.
 ② 흩어진 35명이 각각의 로스쿨에서 크리스천 법률가모임의 핵심이 된다.
 ③ 해마다 두 번씩 그 35명 * 3년 = 105명이 모처에 모인다.
 ④ 모여서 크리스천 로스쿨의 비전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가를 확인한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비록 한동대학교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국법을 교육하는 로스쿨을 직접 설립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히 효과적인 방식으로 일종의 ‘보이지 않는’ 크리스천 로스쿨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의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또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서론의 말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와 함께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몇 가지 의제들이 시급히 토론될 당위성이 존재한다.
 우선 기독 대학들에 대해서는 특히 로스쿨을 유치하지 않는 대학의 법학부를 포기하지 말고 도리어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향적으로 강화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의 운영이 반드시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존전략의 하나로서 고려해 볼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독 법학교수들의 네트워크에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2009년 3월 이후 출범할 20-25개의 한국법 로스쿨 내부에 기독 법학교수 및 기독 법학도들을 연결하는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도록 해야만 한다. 적어도 현재 각 법과대학의 기독 학생회나 사법연수원의 신우회 수준을 넘어서는 기독 예비법률가 네트워크가 갖추어져야 한다.

 나아가 현재의 기성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로스쿨 졸업자들까지를 체계적으로 재교육할 수 있는 법률가계속교육시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에서 선점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미국법교육의 비교우위를 가진 동시에 나름대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진척시키고 있는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의 역할이 주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전 주체가 힘을 모아 장기적으로 로스쿨체제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될 법학교수 인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틀 속에서 양성하는 체제를 하루바삐 갖추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법과 종교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에모리 대학 로스쿨의 존 위티(John Witte Jr.)교수는 캘빈 칼리지-하버드 로스쿨-에모리 대학 로스쿨 교수-동 법과 종교 연구소장의 진로를 밟았던 것이다.

3. [생활분과] 회원소식

*2007. 11. 15. 목요일 오후 1:30 연수원 소강당에서 사법연수원 신우회 종강예배가 있었습니다. 기독변호사회에서는 전재중, 태원우 회원이 참석하였습니다.
*권기정 변호사님의 딸 권예은의 돌잔치가 11. 17. (토) 18:30 트레인스레스토랑(롯데마트 서울역점 3층)에서 있었습니다.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07. 11. 10.(토) AK 미션 정비를 위한 Young Group 모임이 아침 8시에 사랑의 교회 법조 선교회에서 있었는데, 엄재상, 남윤재, 김종철, 유정우 회원이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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