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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17. 15:30 기독교학문학회에서 한동대 이국운 교수님이 '로스쿨체제하의 기독법학교육의 진로'라는 주제로 발표하셨는데, 김종철 회원이 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아래에 이국운 교수님의 발제문을 싣습니다.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 -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모색 -
李 國 運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법학부 교수, 헌법/법사회학)
1. 문제의 제기
2007년 7월 3일 로스쿨법 통과 이후 법학교육계 전반에 격변이 발생하고 있다. 로스쿨 총입학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의 갈등이 2000명 수준에서 가까스로 봉합되자 로스쿨 유치를 위한 각 대학의 물밑 경쟁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국에서 약 40여개의 대학이 로스쿨 유치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정을 서둘러 현 정부의 임기 내에 개별 로스쿨의 설립인가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하려는 계획이다. 전국을 5개 고등법원 관할구역으로 나누어 개별 로스쿨을 인가하겠다는 법학교육위원회의 방침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시중의 예측에 따르면 2009년 3월 약 20-25개의 로스쿨이 출범할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로스쿨제도의 시행이라는 법학교육의 체제 변화에 대응하여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동대학교의 상황을 중심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평가와 전망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외부의 관심 및 기대와는 달리 2007년 11월 현재 한동대학교는 로스쿨 유치에 관하여 어떠한 구체적인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한동대학교, 특히 그 내부의 법학부는 로스쿨 유치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70여개의 영세법학부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고사(枯死)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글에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한다는 일반적인 목적 이외에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생존전략을 마련한다는 구체적인 목적 또한 부여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 유치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로스쿨체제 하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내세웠던 ‘크리스천 로스쿨’의 비전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그저 10년가량 존속했던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그 졸업생들의 기억 속에나 남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로스쿨체제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설정에 의외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먼저 한동대학교 법학부는, 후술하듯이,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리버럴 아츠로서의 법학(Law as Liberal Arts in Christian Perspective)을 교육하는 전무후무한 특성화 법학부로 변신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중 하나인 앰허스트 칼리지(Amherst College)의 법학부(Law, Jurisprudence & Social Thought)를 모델 삼아 기존 법학부를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목적에 맞는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유일무이한 미국법 로스쿨로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Handong International Law School)과의 관련을 체계화시킬 경우에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생존전략은 로스쿨체제 하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모색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부과정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면적으로 시도하는 이 선택이 다음 네 가지의 측면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제도적 강화를 이끌어내는데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① 기독 대학들의 경우, 특히 로스쿨을 유치하지 않는 대학의 법학부를 포기하지 말고 도리어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향적으로 강화하는 것. ② 기독 법학교수들의 경우, 2009년 3월 이후 출범할 20-25개의 한국법 로스쿨 내부에 기독 법학교수 및 기독 법학도를 중심으로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게 하는 것. ③ 기독 법률가운동의 경우, 현재의 기성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로스쿨 졸업자들까지를 체계적으로 재교육할 수 있는 법률가계속교육시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에서 선점하는 것. ④ 이상의 전 주체가 힘을 모아 장기적으로 로스쿨체제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될 법학교수 인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틀 속에서 양성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
2. 로스쿨체제와 기독교적 법학교육
(1)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모색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위기냐 기회냐를 논하기에 앞서 현실을 살피는 것이 바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현재 대한민국의 법학교육 현장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존재하기나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감히 ‘그렇다’는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국공립대학이나 일반 사립대학의 법학부는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기독교대학들에 설치된 법학부에서조차 기독교적 법학교육이라고 일컬을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통 사법시험과목 일색인 교과과정, 강의와 연습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교육방법, 교과서위주의 법학교육에 집착하는 교수, 소위 신림동 고시촌 방식의 사법시험노하우를 습득하는데 관심을 빼앗긴 학생. 이와 같은 법학부의 구성요소들은 기독교대학의 법학부에도 거의 다를 것이 없다.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으로 대표되는 종래의 법학교육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한 마디로 ‘취미생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교수의 차원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자신의 전공연구와 관련하여 어쩌다 한 번씩 제기되곤 하는 골치 아픈 주제일 뿐이다. 헌법분야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원칙, 민법분야의 교회재산분쟁, 형법분야의 낙태죄, 안락사, 사형제도 폐지논란 등이 단골메뉴들이다. 최근에는 사립학교법이나 목회자들의 면세혜택문제가 거론되면서 행정법분야도 일부 관련이 되기 시작했다 그 외에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일부 독실한 기독교인 법학자들의 사회참여의 부산물이거나 일부 기초법학전공자들의 전문적인 연구관심(법신학, 교회법 등)의 표현일 뿐이다. 교수의 차원이 이렇다면 학생의 차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기독교적 법학교육은 고시공부의 짬을 내서 모이는 법대기독학생회 활동, 즉 일종의 써클 활동일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법을 연구하고 교육한다는 것은 몇몇 열성분자들의 개인적 탐구를 넘어서기 어렵다. 국공립대학이건, 일반 사립대학이건, 심지어 기독교대학의 법학부이건 이런 사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 법대기독학생회에 모였던 학생들 중 사법시험의 관문을 넘은 사람들은 다시 사법연수원에서 신우회로 모인다. 그리고 이들의 모임에서 시작하여 기독변호사회도 모이고, 법원과 검찰 내부의 기독인들도 모이며, 그들 중 일부는 기독 법률가들로 구성된 기독 로펌을 구성하거나 심지어 ‘법을 통한 선교’(mission through law)를 모토로 선교단체를 조직하기도 한다. 이에 자극받아 기독 법학교수들도 한두 번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임이 결집되어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자는 결의로 발전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수많은 기독교대학들 가운데 단 한 군데서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로스쿨을 설립하겠다는 기획은 제시된 바 없다. 이상과 같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현실은 로스쿨체제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측면에서 로스쿨체제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논의에 필요한 수준에서라도 로스쿨체제의 골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로스쿨체제의 골격 - 논의에 필요한 수준에서 로스쿨은 3년제의 전문대학원이다. 로스쿨체제의 출범 이후 과도기적으로 존속하는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결국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변호사시험의 응시자격 부여된다. 로스쿨에서 수여하는 학위는 전문법학석사(J.D.)이며 학술박사학위과정을 포함하여 기타 학술학위과정을 설치할 수 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로스쿨 설치대학에는 법학부를 둘 수 없다. 그밖에 타대학 및 비법학전공자를 각 신입생의 1/3 이상 선발해야 한다. 로스쿨의 입학여부는 학부성적 법학적성시험 외국어 능력 로스쿨 자체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로스쿨은 변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로스쿨은 어디까지나 소송기술을 갖춘 중인(中人)으로서의 변호사를 양성할 뿐인 것이다. 로스쿨체제 이후 판사, 검사, 법학자, 기타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들은 로스쿨이 배출하는 변호사들 가운데서 선발된다. 그 절차는 아직 제대로 결정되지 않았으나, 이들이 통상의 변호사들보다 고도의 인격성, 세계관적 식견 및 광범위한 법적 분쟁해결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들은 소송기술을 넘어서는 최종적 분쟁해결자, 최종적 정책결정자로서의 능력을 갖춘 중인(重人)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특수한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이 수련과정은 로스쿨 이전에도 필요하고 로스쿨 이후에도 필요하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로스쿨을 설치하는 대학에는 법학부를 폐지한다. 따라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기타 수도권의 주요 사립대학들과 지방의 주요 국립대학들은 로스쿨을 설치함과 동시에 법학부를 폐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전국 20-25개 예상)
(3) 기회의 구조 - 中人이 아니라 重人의 배움터! 결국 2007년부터 로스쿨 진학을 목적하는 많은 대학 신입생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로스쿨을 설치하는 전국 20-25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그 중 어느 곳에서도 법학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문적인 변호사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학생들은 변호사가 된 이후를 생각해서 전공을 정할 수도 있겠지만, 판사, 검사, 법학자, 기타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등은 법학인접전공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학부과정에서부터 법학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스쿨지원자들을 유치하려는 학부 차원의 전략은 크게 두 종류로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심리학 등을 엮어서 일종의 pre-law program을 마련하는 것이다. 로스쿨이 설치되는 20-25개의 메이저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여기에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법학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학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로스쿨체제가 안정되기 전까지의 약 10년간 이와 같은 pre-law program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으로는 하위직 공무원시험 등을 대비하는 프로그램이면서 이를 동시에 pre-law program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주로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하는 대학들에서 종래의 법학부가 경찰법행정학과 등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로스쿨입학생들을 배출하는 데는 결정적인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상위 20-25개 메이저 대학들이 실질적으로 로스쿨입학가능학생들을 선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일반론은 결국 두 종류의 커다란 대학들 사이에 하나의 작은 틈새시장을 탄생시킨다. 한편에는 로스쿨이 설치되는 20-25개의 메이저 대학들이 있다. 그 곳에는 법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각종 인접학문들 속에서 변죽이나 울릴 뿐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pre-law program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기존 법학부를 하위직 공무원시험 대비반으로 바꾼 뒤, 그것이 로스쿨진학에도 유리할 수 있다고 둘러대는 주변부 대학들이 있다. 로스쿨 졸업자들(변호사)이 늘어나서 하위 공무원직에까지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 주변부 대학의 pre-law program은 곧바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커다란 대학들 사이에 하나의 작은 틈새시장이 있다. 그것은 학부에서 장래에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직업교육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변호사직업을 뛰어넘어 공직으로서의 법률가직을 목표로 삼는 학생들에게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 법과 법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로스쿨 진학과정에서 이들은 적어도 로스쿨 교수진들로부터 가장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만이 법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로스쿨에 진학한 ‘준비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中人이 아니라 重人을 기르는 큰 배움터, 곧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이라는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상과 같은 기회의 구조 속에서 포착될 수 있다.
(4) 기독교적 법학교육에 관한 함의 서양의 오랜 전통 속에서 법은 원래 인문교양의 핵심이었다. 초기의 대학들에서 법학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계몽적 과학주의의 대두와 함께 법의 과학화가 진척되고, 근대의 국민국가들이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을 독점한 뒤 국가적 차원에서 법률가를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법은 급격히 사법관료 또는 변호사들이 수행하는 국가법의 소송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로스쿨체제는 소송기술의 전수과정으로서의 전문법학교육을 대학원차원으로 빼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로부터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의 자리가 복권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은 결국 세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에 입각하여 적극적으로 법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법시험체제 및 국가적 실정법의 울타리 속에 갇혀야만 했던 종래의 법적 사유가 그 지평을 뛰어 넘어, 다양한 세계관적 기반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경우에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법적 사유를 진척시킬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법, 법제도, 법적 현실에 관한 기독교적 반성 및 성찰이 보다 전면적으로 시도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라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한동대학교의 법학부의 재구성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1) 기초법학중심주의 그렇다면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가져야 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로스쿨에 진학해서 배울 내용을 미리 다 가르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로스쿨에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들, 그러나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알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재음미되어야만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 글은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매우 학술적인 교육적 관점을 고려해 보고자 한다. 실정법학과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평가절하 되었으며, 앞으로의 로스쿨체제에서 더욱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기초법학 및 기초법학교육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인문교양의 핵심으로서의 법은 일차적으로 기초법학의 영역에서부터 확보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또한 기초법학중심주의는 장차 로스쿨체제가 상징하게 될 실정법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안티테제를 정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점에서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기초법학중심주의를 그 교육적 기초로 삼아야만 한다. 주지하듯 법학의 학문성에 관하여는 오래 전부터 저주에 가까운 부정(否定)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과의 관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법 자체의 한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입법자의 세 마디 말이면 도서관에 있는 법서는 휴지가 된다’는 키르히만의 독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실정법이 이처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본질적으로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면, 그 해석에 복무하는 실정법학의 학문적 독자성은 부인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나아가 그 실정법의 교육은 당파적인 가치체계를 전수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학문적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이러한 공격에 대하여 실정법학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소극적인 방어로서 학문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의를 다루는 지혜로서, 삶을 이끄는 실행의 덕으로서, 일종의 행위예술로서 법과 법학을 고양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획들이다. 둘째는 적극적인 방어로서 학문의 차원을 지키면서 실정법학의 당파성을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방식으로 실정법학에 대한 다양한 성찰(reflection)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이런 작업들이다. 기초법학의 존재근거는 말할 것도 없이 학문의 독자성이 존재한다는 신념아래 후자, 즉 적극적인 방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실정법학의 학문적 무가치성을 긍정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그 주장을 회피하려는 태도로부터 기초법학을 정초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런 점에서 기초법학은 근본적으로 실정법과 실정법학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긍정은 정직한 긍정이다. 실정법이 제도화된 편견이며, 실정법학이 제도화된 편견의 체계적인 정당화라는 사실을 기초법학은 그 출발점에서 받아들인다. 다만, 그러한 당파성이 학문적 성찰의 대상에서 실정법 또는 법을 축출해야 할 근거가 된다는 키르히만의 저주를 기초법학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법학이 출발하는 곳은 언제나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후술하듯이,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방식으로 실정법학의 한계를 확인하고 극복해 보려는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의 복잡한 의구심이다. 오로지 자신의 법적 판단에 학문적 의미를 부여하길 원하는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만이 기초법학을 위한 장정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실정법학에 복무하고 있거나 그 복무를 목적하는 모든 법률가, 법학자 또는 그들이 되려는 자들은 누구나 기초법학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비록 그 자격을 현실화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더라도, 기초법학이 실정법학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실정법학의 최대한은 그 저변에 깔린 편견을 제도적으로 순화하는 작업까지이다. 제도화된 편견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실정법학 내부에서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독점금지법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경제법학의 경우, 독점금지조치의 효율화와 공정화를 타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독점 그 자체의 부당성이나 독점금지 그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법학(독점금지법학) 자체의 근본전제를 무너뜨리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도전에 관하여 실정법학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은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등장하는 기초법학은 그러한 불손한 도전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독점금지법의 한정된 전제를 넘어 더욱 보편적인 가설을 내세우고 그 정당성을 증명해보자고 그 도전자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특별히 실정법(학)만능주의의 유혹으로부터 법률가를 구출함에 있어서 기초법학이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앞서의 실정법(학)무용론이 실정법(학) 자체의 권력성에 눈을 감게 하는 것이라면, 실정법(학)만능주의는 실정법을 다루는 법률가 또는 법학자의 권력성에 눈을 감게 하는 것이다. 전자에 관하여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법학은 후자에 관해서도 정직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법률가 또는 법학자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실정법(학)만능주의가 매력적이라는 점을 기초법학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매력이 근본적으로 유혹이며,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정법(학)만능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처럼 기초법학은 실정법(학)무용론과 실정법(학)만능주의의 두 가지 위험에서 실정법(학)과 법률가 또는 법학자를 동시에 구원한다. 기초법학은 이 두 종류의 독재가능성에 관한 독특한 방지책인 것이다. 방지책을 작동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역시 교육이다. 따라서 기초법학교육의 고유한 사명은 실정법전문가로서의 법률가(법학자)에게 실정법학의 가치와 한계에 대한 균형감각을 배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에 소홀할 경우, 두 종류의 독재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쉽게 표현하자면, 기초법학교육은 전문적 법률가에게 일반적 교양인의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소재인 실정법과 실정법학의 권력성, 나아가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권력성을 의심하고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초법학교육은, 법률가의 인격적 덕성을 함양한다는 차원에서, 실정법학교육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가결의 학문적 요청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법학교육은 영속적인 것이며, 시대정신과의 호흡 속에 실정법(학)의 전제를 의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것은 현재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초법학교육은 교양법학교육이며, 비판법학교육이며, 근거지움의 법학교육인 동시에 시대정신의 법학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법률가(법학자)의 정체성과 윤리와 세계관이 태어나며 전수되는 유일한 지반이다.
(2) 기초법학적 사유의 구성요소 현재 대한민국의 정형화된 법학교육 커리큘럼 속에는 이미 다양한 기초법학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다. 법철학, 법제사(한국, 서양, 동양, 로마), 법사상사, 법사회학, 법경제학, 법과 정치, 영미법, 독일법, 비교법, 그밖에 여러 강독과목들이 그러하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기초법학과목들이 어떤 유기적인 연결을 가지고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 과목들을 담당하는 교수들 역시 기초법학 전체를 통관하는 관점과 이해를 가지기보다는 좁은 의미의 전공분야에 집중하기 십상이다. 사실 사법시험의 합격을 목표하는 대부분의 법학도들에게 기초법학과목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환영받지 못하는 과목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조율 없이 산발적으로 전달되는 기초법학지식들은 앞서 말한 고유한 사명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기초법학과목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도모함에 있어서, 먼저 고려할 것은 입문과목의 중요성이다. 예컨대, 미국 로스쿨에서 신입생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법률자료조사방법론 및 법률문장론’(Legal Research and Writing)은 이후의 법학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있도록 돕는 선수과목이다. 미국적 맥락에서 실정법학이 어떤 형태의 논증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 필요한 법적 자료들의 구성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이 과목의 목적이다. 기초법학교육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입문적 선수과목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은 법학도들로 하여금 일찍부터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익숙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것과 구분되는 기초법학교육의 독자성에 관하여 인식과 관심의 여지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소위 기본 3법(헌법, 민법, 형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자마자 법학도들이 급격하게 기초법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까닭은 결코 실정법의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실정법학이 전개되는 방식과 논리가 일상적 언어관행은 물론 다른 학문들의 경우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실정법학의 이러한 체계적인 논리는 법학도들에게 하루바삐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와 같은 강제효과는 소송절차를 포함하여 기본 3법의 학습이 마무리되는 대략 2년여의 기간 동안 법학도들을 일반인에서 법률가로 변화시키는데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동시에 법률가로서의 기득권에 익숙해지는 단초로도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실 법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그것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에 대하여 일방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러한 일방적인 우위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 실정법의 내용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에 대한 익숙함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지식의 범위가 아니라 논리의 친근성이 실정법학과 관련하여 법학도와 일반인 사이에 권력의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대부분의 법과대학에서 법학입문, 법학개론, 법률문장론 등으로 개설되어 있는 입문적 선수과목은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만 한다. 첫째는 실정법학의 체계적인 논리를 효과적으로 선보임으로써 실정법학교육의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논리의 장점과 단점을 드러냄으로써 실정법학의 가치와 한계를 부각시키고, 이러한 성찰을 이끄는 기초법학적 사고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근거지우는 것이다. 이 양자의 요청을 공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실정법학교육과 기초법학교육이 균형을 잃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주지하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법학교육 현장에서는 전자의 압도와 후자의 위축으로 이런 불균형이 뿌리 깊게 구조화되고 있다. 입문적 선수과목이 제대로 진행되었을 경우, 기초법학교육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기초법학과목들의 유기적인 연결이다. 법철학과 법제사, 그리고 법사회학 등이 각각의 우월성을 내세워 일종의 할거주의적 풍토를 조성한다면, 기초법학교육은 결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결국 기초법학적 사고의 구성요소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다음의 네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실정법학에 대한 입체적 성찰이다. 첫째는 역사적 반성이다. 이것은 법학도 앞에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현재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작업이다. 법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미래을 배제한 채 현재에만 집착하는 태도인 실정법(학)만능주의는 상당히 제어될 수 있다. 시간 축을 따라 연원을 추적하고 추이를 추급하다보면, 그 역사 속에서 계승된 전통과 그렇지 못한 전통이 혼재하고 있으며, 계승된 전통도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경우 법학도는 누구에 의하여 어떤 이유로 그와 같은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정당했는지를 묻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총체적 문화사이자 심성사의 일부로서 법의 역사를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는 사회적 반성이다. 이것은 법학도 앞에서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를 당위적 명령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로 이해하는 작업이다. 그와 같은 사회적 사실이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했으며, 또 어떠한 결과를 배태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검토하는 것이 여기서의 핵심이다. 이 검토는 입장에 따라 ‘권력’의 문제에 집중하거나(법정치학), ‘효용’의 문제에 집중하거나(법경제학), ‘문화’의 문제에 집중하는(법인류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수행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법에 관한 사회적 반성은 특정한 가치와의 관련 속에서 사회적 사실들 간의 상호관계를 해명한다. 이러한 해명은 곧바로 실정법(학)과 그것을 해석하는 법률가(법학자)가 사회적 인과관계의 연쇄 가운데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법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를 다양한 관점에서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이론적 반성이다. 이것은 시간축과 공간축의 기초법학적 반성이 산출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역사적 반성, 사회적 반성은 현존하는 실정법(학)이 내세우는 이론적 전제들에 대항하여, 그것을 의심케 하는 수많은 다른 사례들을 확보해 준다. 이론적 반성은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 비교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비교의 기준이 ‘이론’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장하는 새로운 이론은 실정법(학)을 이끄는 기성의 이론을 검증하며, 그것을 보완하거나 혹은 대체하면서 실정법(학) 자체의 이론적 재구성을 정당하게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법이론의 역사를 장식해 온 법실증주의와 자연법이론과 사회학적 법이론의 삼자정립(三者鼎立)은 이와 같은 논쟁의 구도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넷째는 윤리적 반성이다. 이것은 실정법(학)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반성이 도달하는 최종의 목적지이자, 그러한 반성을 추동시켰던 최초의 출발점이다. 결국 근본적인 물음은 ‘법학도 앞에서 실정법(학)으로 군림하는 지식체계에 대하여 그 법학도가 윤리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실정법(학)에 대한 윤리적 반성은 필수적인 요청이다. 제도화된 편견으로서의 실정법(학)은 동시에 권력의 표현이므로, 그것에 대한 윤리적 반성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제도화된 편견적 권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방식의 기초법학적 반성은 윤리적 반성에 의하여 완성된다. 다시 말해, 기초법학교육이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이유의 태반은 이와 같은 윤리적 완성에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초법학적 사고는 이러한 네 가지 반성의 차원을 끊임없이 왕복한다. 윤리적 반성은 다시 이론적 반성을 자극하며, 그것은 또 다시 사회적 반성과 역사적 반성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끈질긴 왕복과정을 통하여 기초법학적 사고는 실정법(학)에 표현된 시대정신과의 창조적 불화를 배양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법의 세계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탄생시킨다. 그 결과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표현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하나는 실정법(학)의 전체에 합당한 정당성(reasonable legitimacy)을 부여하는 특정한 법이론(jurisprudence)을 산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관련하여 실정법(학)의 해석에 복무하는 법률가(법학자)들의 윤리적 기준으로서 법윤리(legal ethics)를 산출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탄생된 법이론과 법윤리는 결코 폐쇄적인 것이 아니며, 계속적인 기초법학적 반성의 대상이자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학교육의 갱신을 목적하는 개혁운동이 정초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개혁운동과 더불어 기초법학교육은 법률가의 인격적 덕성을 함양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기초법학중심주의에 기독교적 관점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이제 명확하다. 이상과 같은 기초법학교육에 기독교적 관점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의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청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에 관한 토론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의 새로운 교육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그 내부에서 이루어질 앞으로의 작업결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다만 그 작업과정에서 항상 상기되어야 할 다음의 네 가지 지침을 거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첫째,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한동대학교 전체의 교육과정,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수행되는 교양교육과정과 밀접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연계는 위에서 언급한 기초법학교육의 네 가지 구성요소, 즉 역사적, 사회적, 이론적, 윤리적 반성의 모든 차원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투영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둘째, 이 과정에서 기독교적 관점은 반드시 개방된 구조 속에서 이해되고 제시되어야 한다. 기독교에 관한 특정한 입장만을 종파주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대의에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방법론적으로는 예컨대 리처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이념형적 접근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현대사회 속에서 법의 핵심적 위상을 생각할 때,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공공신학의 성과들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 및 내용에 연결시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독교적 관점은 그에 관한 단순한 이해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 속에서 관철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한 전제로서 최소한의 실정법(학)의 학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법적 문제들 속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관철시키는 것에 관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방법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예로는 법적 난문(Hard cases)들에 대한 도전, 고전적인 법률문헌들에 대한 독해, 법적 에세이의 작성, 모의재판형식의 법적 논증 경연, 법률선교현장의 답사 및 각종 활동참여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반드시 국민국가 단위의 법시스템이 현격하게 약화되는 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만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기초법학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기독교적 법학교육이 그 다음 단계의 실정법교육으로서 한국법 로스쿨교육만이 아니라 미국법 로스쿨을 비롯한 국제적 차원의 실정법교육을 감안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외국어 강의나 로스쿨진학의 진로상담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4. 성공의 조건들
(1)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은 인문교양으로서의 법을 사랑하고 법학 그 자체를 즐기는 크리스천 법학자들에 의해서 가장 잘 운영될 수 있다. 현재의 법제도를 솜씨 있게 소개할 수 있으면서,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윤리적, 비교적, 문화적, 이론적 접근을 넘나들며 구사할 수 있는 학문적 유연성을 갖춘 사람, 나아가 자신의 학문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끊임없이 성찰할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총명한 학생들과 함께 뒹구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는 크리스천 법학자들을 찾아내어 합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크리스천 법학자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국내외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유수한 크리스천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졸업하고 법무박사학위(J.D.)를 받은 뒤 다시 연관분야의 학술박사(Ph.D)를 획득한 인재들을 교수요원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을 리크루트 하기 위하여 인적 연결망을 풀가동해야만 할 것이다.
(2) 누가 배워야 하는가?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에는 장래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기독 법학도들이 모여야 한다. 적어도 이들에게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은 가장 유력한 학부과정의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어차피 로스쿨로 진학할 예정이라면, 예를 들어 S대의 경제학과, K대의 정치외교학과, Y대의 경영학과 등에 진학하는 것보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에 진학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적어도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자리 잡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로스쿨체제로의 전환이 예고된 올해 입시부터 곧바로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을 선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 한동대학교의 예비신입생들에 대한 대응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나중에 로스쿨에 진학할 건데, 나를 위해서 한동대학교는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수험생의 질문에 ‘글쎄, 우리는 로스쿨을 추진하지 않으니까 결국 법학부는 좀 어려워질 거고...잘 모르겠지만...총장님은 무슨 계획이 있으신 것 같더라...’는 식으로 답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만 한다.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가 되겠다면 본인에게 맞는 관심분야를 학부 때부터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런 전공들은 한동대학교에도 다수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본인이 크리스천으로서 변호사자격을 갖춘 뒤 결국 판사, 검사, 법학자, 고위정책결정과정의 공적 법률가가 되기 원한다면, 한동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는 오로지 한동대학교 법학부에만 존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5. 맺음말 - 몇 가지 제언을 중심으로
만약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이 한 해 35명 정도의 재학생을 가진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① 25명은 국내 로스쿨에 10명은 외국 로스쿨(주로 미국과 중국)에 진학한다. ② 흩어진 35명이 각각의 로스쿨에서 크리스천 법률가모임의 핵심이 된다. ③ 해마다 두 번씩 그 35명 * 3년 = 105명이 모처에 모인다. ④ 모여서 크리스천 로스쿨의 비전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가를 확인한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비록 한동대학교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국법을 교육하는 로스쿨을 직접 설립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히 효과적인 방식으로 일종의 ‘보이지 않는’ 크리스천 로스쿨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 at Handong의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또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한동대학교 법학부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서론의 말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와 함께 로스쿨체제에서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몇 가지 의제들이 시급히 토론될 당위성이 존재한다. 우선 기독 대학들에 대해서는 특히 로스쿨을 유치하지 않는 대학의 법학부를 포기하지 말고 도리어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전향적으로 강화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Law as Liberal Art in Christian Perspective의 운영이 반드시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존전략의 하나로서 고려해 볼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독 법학교수들의 네트워크에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2009년 3월 이후 출범할 20-25개의 한국법 로스쿨 내부에 기독 법학교수 및 기독 법학도들을 연결하는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도록 해야만 한다. 적어도 현재 각 법과대학의 기독 학생회나 사법연수원의 신우회 수준을 넘어서는 기독 예비법률가 네트워크가 갖추어져야 한다.
나아가 현재의 기성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로스쿨 졸업자들까지를 체계적으로 재교육할 수 있는 법률가계속교육시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관점에서 선점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미국법교육의 비교우위를 가진 동시에 나름대로 기독교적 법학교육을 진척시키고 있는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의 역할이 주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전 주체가 힘을 모아 장기적으로 로스쿨체제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될 법학교수 인력을 기독교적 법학교육의 틀 속에서 양성하는 체제를 하루바삐 갖추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법과 종교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에모리 대학 로스쿨의 존 위티(John Witte Jr.)교수는 캘빈 칼리지-하버드 로스쿨-에모리 대학 로스쿨 교수-동 법과 종교 연구소장의 진로를 밟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