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 호텔 지역에서 열린 ‘남북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 북한식으로 하면 ‘북남선언 리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련대모임’ 이라는 민간단체 교류 행사에 참석하기위해서 였습니다.
서울을 출발해 속초, 고성을 지나니 곧 금강산이었습니다. 남에서 나가는 ‘출경’ 수속과 북으로 들어가는 ‘입경’ 수속을 포함하니 6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과정만 없다면 지금의 도로사정으로도 4시간이면 충분하겠더군요. 날씨는 푸근했습니다. 며칠 전 눈이 내렸다고 하더니 금강산 호텔 지역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고, 금강산 자락에도 살포시 눈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첫 합을 나누고
첫 날 일정으로 시민사회 분야 간담회를 하는데 6.15북측위원회의 부위원장이 남측 인사들의 소개를 다 듣고 나서는 “지면(紙面)으로 보던 박래군 선생을 만나게 돼서 반갑습네다.”라고 하더군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시민사회 대표들이 북측을 향해 남북 교류와 관련된 이런저런 제안을 쏟아내자 북측 인사들은 흐뭇하게 들으면서도 정작 실속 있는 약속 같은 건 하지 않고 적당히 눙치고 넘어갔습니다. 남북 간의 대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몇 합은 주고받아야만 될 것인데 이제 첫 합을 나눈 것이지요.
다른 분야에서는 말이라도 섞지만, 인권 분야에서는 북측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한 줄 끈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방북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북측에 들어가서 조심해야 할 말과 태도 중에 ‘주체사상과 인권’이 들어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일이 될 테니 조심하라는 것이고, 인권 얘기는 북측 사람들이 꺼려 하니 삼가라는 겁니다.
금강산을 보며 금강산 호텔의 방은 따뜻했고 발코니에서는 금강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녁 연회가 끝나고 방에서 대동강 맥주를 마시는데 소문대로 맛이 좋았습니다. 남쪽 맥주는 이에 비하면 물에 맥주맛만 첨가한 것 아닐까 싶은 정도였습니다. 평양소주는 25도인데 희석주가 아니라 증류주라서 그런지 맛이 깨끗했습니다. 들쭉술도 맛이 좋았고요. 병마개도 이전보다 생생했습니다. 이전에 북한 술을 구입했다가 망쳐본 경험이 있었거든요. 과자류도 많이 발전했고 포장도 세련되어 있었습니다. 북한 경제 변화의 일면이 보였습니다.
둘째 날 동이 트기도 전에 버스를 타고 해금강으로 갔습니다. 해금강에 가까워지자 바다에서 시작해서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환한 불빛의 띠가 보였습니다. 바로 남쪽 철책선이였습니다. 너무 가까웠습니다. 지척 간에 남과 북의 분단이 있었던 거지요. 해가 동쪽 끝 수평선을 올라오는데 뭉클했습니다. 특별한 일출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그것도 금강산에서 일출을 볼 줄이야.
오전에 신계사에도 들렀습니다. 전쟁 때 불타버린 절을 2007년에 조계종의 지원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신계사 주변으로 금강산 봉우리와 능선이 늠름하게 펼쳐졌습니다. 설악산 정도겠지 생각했는데 다른 급의 산이었습니다. 1만2천 봉우리 중에 제가 본 것이 몇 개나 있을까요? 외금강도 좋지만 내금강 구역은 더 좋다는데, 저 산에 언제쯤 자유롭게 오를 수 있을까요?
점심을 먹고 다시 남으로 떠나려니 봉사원들이 나와 손을 흔들었습니다. 앳된 얼굴의 봉사원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한겨울에도 얇은 한복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었습니다. 춥지 않으냐고 할 때마다 ‘일 없다’며 웃지만 고된 노동이 눈에 밟혔습니다.
‘도이머이’의 꿈을 꾸는 봄
국가보안법으로 따지면 저는 1박 2일동안 반국가단체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배하는 금강산에 다녀온겁니다. 반국가단체가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지역으로 탈출해서 반국가단체의 성원들과 회합을 가졌고,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고무·찬양을 했고, 그들과 공동선언도 발표하였으니 지령을 수수하였던 것이고, 그런 뒤에 남쪽으로 잠입한 겁니다. 독재정권 시절이라면 영락없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짓입니다. 이제 그런 두려움 없이 금강산을 다녀왔으니 많이 변한 거겠지요.
마침 평양을 떠난 김정은 위원장의 열차가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허를 찔렸습니다. 그곳까지 열차로 갈 수 있다니…발상의 전환이고, 북한에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곧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회담의 결과로 종전선언과 경제 제재 완화 같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요? 북미관계가 ‘도이머이’(새롭게 바꾼다는 뜻의 베트남어) 되듯이, 남북도 도이머이 되고, 답답한 우리네 삶도 이런 기회에 도이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 봄에는 도이머이의 꿈을 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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