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기소개 시간에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 제 장점이라고 대답해 주목을 샀던 적이 있습니다. 활동가로 오래 살아오며 수입에 맞는 지출을 하다가 생긴 일종의 생존 습관인데요, 필요한 물건을 살 때면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더 저렴한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실제 상품평은 어떤지 찾아보며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필요한 물건인지 확신이 서야만 결제를 합니다. 최저임금 이상 보장되는 정규직이 된 지금에도 그런 습관 때문에 온갖 쇼핑 사이트를 다니며 비교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술값은 안 아끼는데 말이죠;;)
그런 제가 요즘엔 평소에 써보지 못한 규모의 돈을 팍팍 쓰고(?) 있습니다. 2020년 배분지원사업의 예산을 직접 짜고 공모사업 접수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속 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와 <2019 활동가 이야기 주간> 등을 통해 들었던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올해 사업에 반영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돈 쓸 곳이 자꾸 늘어납니다.
정기공모사업 시즌에 맞추기 어려운 <인권활동119>는 갈수록 요청이 많고 예산도 금방 소진되어 올해는 1천만 원을 더 늘렸습니다. 새로운 인권의 날을 발굴해보고 싶어 <반차별데이데이>의 예산도 늘렸고요. 활동가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배분사업을 새로 기획하다보니 1천5백만 원 정도가 또 늘어났고, 작년에 증액한 <인권프로젝트-온>의 규모도 유지해야 합니다. 지원금이 가는 곳에 돈 말고도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한지 살피고 배분사업 설계에도 공을 들이려 하니 진행비도 많이 늘었습니다.
다 합하면 억 단위가 되는 배분 예산을 보며 이렇게 큰돈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에 문득 감탄하다가, 이렇게 필요한 곳이 많다니 하며 다시 놀랍니다. 각 배분사업을 통해 올해는 어떤 프로젝트와 활동가를 만날지 기대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사업의 진행 과정이 인권재단사람의 지향과 맞닿아있기를 바라면서요.
돈을 잘 써야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마음이 가는 곳에 돈과 시간을 쓰게 되는 것처럼 인권운동과 인권활동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잘 쓰고, 그래서 모금도 더 잘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2월 13일,
배분지원팀장 여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