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도 자 료 (제2020-11호, 2020. 5. 4.) | 담당임원 | 이용우 인권이사(010-4244-8564) 장희진 공보이사(010-5244-3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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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임신 중 업무에 의한 태아 건강손상을 산재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
| 2009년, 2010년경 제주의료원에서는 임신한 간호사들 중 여러 명이 유산을 하거나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다. 이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를 토대로 근로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유산한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산재를 인정한 반면에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처분(부지급, 반려)을 하였다. 이후 제기된 소송에서 1심은 근로자들이 승소하였으나 2심에서는 패소하였다. 대법원은 2016년 상고심 접수 이후 4년 만인 지난달 29일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모(母)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이번 판결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대법원 판결은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태아는 모체의 일부이고 출생한 때 비로소 권리능력을 부여받는다. 임신 중에 업무로 인하여 태아의 건강손상이 발생한 경우, 유산이나 유산증후는 여성 근로자 본인의 신체완전성이나 노동능력에 영향이 있다고 보고 산재로 인정하는 반면에 출산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여성 근로자 본인의 건강손상이 아니므로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태아의 건강손상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선천성 질병, 장애아 출산의 경우 민사구제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근로자는 입증의 어려움과 사업주의 무자력 위험, 쟁송에 따르는 비용과 시간 등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은 우리 헌법이 여성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제32조 제4항)와 국가의 모성 보호 의무(제36조 제2항)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 제11조 평등권을 근로 제공을 통한 여성의 직업 수행의 영역에서 구체화한 것이라고 하면서,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이는 국가의 책무임을 인정하였다. 또한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경우 노동능력 상실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태아의 건강손상이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모성과 태아의 생명보호의 측면에서도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유산된 경우와 선천성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출생한 경우를 달리 평가할 수 없는 점에서 사회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라고 할 것이다.
둘째,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보장범위를 자녀의 치료를 위한 의료서비스까지 확대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출산 이후 모체와 분리된 상태에서 근로자 본인과는 별개의 인격체인 자녀에게 산재보험법상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여 보험급여 수급과 관련한 기초적 법률관계가 성립한 이상 근로자가 그 후로 근로자의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이러한 보험급여 수급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같이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이제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모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였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태아 상태로 치료받는 경우 여성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하는 데 장애가 없는데, 마찬가지로 출산 이후에 여성 근로자를 요양급여의 수급권자로 보더라도, 그 요양급여의 내용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되는 것이므로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개념을 해석ㆍ적용함에 있어서 문리적 해석과 형식논리에 치우쳐 출산 이후 여성 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을 부정하는 것은 여성 근로자와 모성의 특별한 보호를 규정한 헌법규정들의 취지와 정신을 고려하여야 할 전형적인 국면에서 오히려 이를 전적으로 외면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에 찬동한다.
셋째, 이번 판결은 국회와 정부에 산재보험제도와 법령의 개선이라는 입법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대법원이 2017년 삼성전자 직업병 산재 사건 판결에서부터 판시해 온 바와 같이, 산재보험제도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이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을 견인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안정적인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이번 판결을 계기로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한 구체적인 산재인정 기준, 보험급여의 종류, 지급 수준, 신청절차 등에 대한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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