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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n번방, 범죄를 유료 콘텐츠로 여기는 사회의 파생물

뻬뻬로 2020. 5. 5. 11:26
5월호] n번방, 범죄를 유료 콘텐츠로 여기는 사회의 파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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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야기
하는 사람
심에스더

 

 

 

‘n번방 사건’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일단 가장 먼저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어요.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디까지 사람을 이용하고 도구화할 수 있을까 싶었죠. 저는 이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기 전부터 관련 기사나 보도로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구역질이 났어요. 그 일을 겪었을 여성들과 동일시되는 부분도 있어서 힘들었어요. 언론 보도를 보기조차 싫었지만, 이 현실을 마주하는 것도 연대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기사들을 다 읽었죠. 관련 다큐멘터리도 보고.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있었는데요. 
이번 일을 ‘n번방’ 사건으로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얼굴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 존재로서 말 한마디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쿨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또 인간은 도구가 아니고 돈이나 다른 물질로 맞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악마의 삶을 청산하게 해주어 감사한다’는 조주빈의 말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피해자들이 아닌 유명인들에게 사과를 했잖아요.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남성, 힘이 있는 사람들을 거론해서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의식하든 못하든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영웅이고, 자기의 서사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같은 거죠. 좀 웃기기도 하더라고요.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도 함께 올렸는데, 실제로 성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심지어 그런 정보를 조작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실제적인 게 더 자극적이니까요. 지금의 성은 쉬쉬하고 터부시되는 대상인데, 그럴수록 더 자극적으로 그려지죠. 평범하고 일상적인, 다양한 성의 모습들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 일탈적인 걸 보여주면 그게 기본 값이 되는 거예요. 나중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요. 포르노라든가 섹시한 몸짓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연기구나 가짜구나 생각이 드니까, 내 옆에 있는 실제적인 걸 보고 싶은 거죠. 더 리얼한 것이 더 야한 것이라는 편견을 주변을 통해 쌓기도 하고요. 성관계 불법 촬영물의 경우, 상대방을 믿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자기의 성적 욕구와 만족을 위해서 소비해버리는 거죠. 

 

 

"이번 일을 ‘n번방’ 사건으로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체포되기 전 어느 인터뷰에서 “나한텐 이게 사업 모델”이라는 말을 했죠. 실제로 n번방이 폭파되자 “돈을 내고 콘텐츠를 이용한 건데 억울하다”는 n번방 이용자의 글도 읽었는데요. 
성 인식과 성 담론의 부재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돈이 인간보다 가치 있어지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가지려는 마음, 이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뒤엉켜서 인간이 인간을 서로 착취하고 있잖아요. 그 속에선 당연히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요. 여성의 몸은 성차별과 성적 대상화가 전제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취급당하기 쉽죠. 그러다 보니 여성과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두고서도 ‘돈을 내고 이용하는 콘텐츠’라는 식의 사고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도 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채팅방에 자극적인 영상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을 영웅시하는 문화가 있었죠. n번방을 두고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이 구현된 공간’이라는 논평도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성성이 뭘까? 그게 진짜 남성성일까? 힘 있는 사람들이 환상을 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치 남성성이 가져야 할 액세서리나 값비싼 명품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남성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런 남성성을 취하고 싶은 건지, 취하고 싶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갖춰야 한다고 배우는 ‘여성성’ ‘남성성’이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가 근래 많이 나왔잖아요. ‘성별다움’은 이 사회에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 여성은 여성다워야, 남성은 남성다워야 사회에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죠.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 사회의 흐름처럼 고민을 해야죠.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세상에 딱 이 두 개밖에 없는지.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게 맞고, 그러니까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 그 남성성은 틀렸다는 거죠.


그런 남성성을 갈망하는 심리는 뭘까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바틀비)를 쓴 박신영 작가가 출판 인터뷰에서 그런 얘길 했어요. 불법촬영물을 찍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공유하고 낄낄거리는 사람들은 성적인 행동이나 자극적인 섹스의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으로 생각한다고.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전리품처럼 다루면서 자기 힘을 과시한다는 거죠. 예전엔 말로만 떠들어대며 과시했는데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로 근거를 남길 수 있게 된 거예요. 기술의 발전은 준비되지 않은 인격을 지닌 인간에겐 재앙이죠. 슬픈 얘긴데,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어요. 여성들의 시체가 쌓인 언덕 위에 남성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요.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게 맞고, 그러니까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 그 남성성은 틀렸다는 거죠." 

실제로 박신영 작가는 종종 남성 신체를 찍은 사진을 받는 것으로 협박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남성의 성은 누군가를 겁줄 수 있지만 여성의 성은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당할 수 있죠.  
맞아요. 신체를 드러내도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하죠. 그건 밤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두려워하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힘과 연결이 되고요. 20대 남성들이 ‘역차별이다’ 하는 얘기도 기성 남성 권력자들이 분배하지 않은 힘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성별 싸움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남성들은 적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저는 아들들에게도 통금을 얘기하라고 부모님들께 말해요. 여자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말이죠. 약자들에게 더 불편한 세상을 만들면 안 되잖아요.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지, 가해자의 위치에 자주 서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되는 세상은 굉장히 게으르고 악한 세상이죠. 


‘내가 그랬냐? 모든 남성에 대한 가해자 몰이 하지 말라’는 선긋기식 반응도 적지는 않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악마와 자기를 동일시했던 조주빈처럼, 의외로 남성들이 ‘모든 남성=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성별 싸움으로 가져가는 건 남성들이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교회에서 성 강의를 할 때 이런 예시를 들어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인식이 안 좋은데, 그들이 ‘개독교’라고 비판할 때 성도님들은 “난 그런 기독교인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 하시냐고.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겠습니다” 하잖아요. 그런데 왜 성범죄 문제에서는 선긋기를 할까요? 그런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어떤 부분에서 자기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부분이 겹치고 자꾸 찔리길래 강한 부정을 하는 것일까, 되묻고 싶어요. 물론 실제로 여성들도 가해자가 될 수 있죠. 그런데 ‘성범죄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고, 대부분의 가해자가 남성인 걸 보니 여성들이 참 두렵겠다. 남성인 나도 내면화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성폭력에 노출이 되니까 안심할 수가 없는 건데 말이에요. 
우리가 크게 한번 놀란 경험이 있으면 그 비슷한 것만 봐도 놀라게 돼요. 트라우마죠. “대다수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의 경험이 있고 나도 그래. 그리고 26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남성들이 이런 걸 봤대. 내 주변 남성들이 그럴 것 같아서 두려워”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비빔밥 먹다가 체한 적이 있어서 비빔밥 먹기가 좀 그래” 하는데 “이 비빔밥은 그 비빔밥이 아니야!”하는 것과 같은 거죠. 왜 그런 식으로 선긋기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있으니 배려해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이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는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리를 두고 보면 타인에 대해서 여유 있게 공감할 수 있어요.


중복 합산한 결과 텔레그램 이용자 수가 26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 정도 수치로도 보편화, 일반화해서 얘기할 수 없다면 대체 몇 명 정도 돼야 많은 남성들이 그렇다는 걸 받아들일까요? 여성을 대상으로 성추행이나 성차별 경험을 물어보면 80% 이상 남성에 의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말해요. 대다수 남성이 가해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다수 여성이 남성에 의한 피해 경험이 있다는 얘기죠. 나 한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수가 그런 경험을 했다면 함께 아파하면서, 남성이라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끼고 성 불평등한 가치관으로 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 아닐까요? 그 정도 상식만 있어도 ‘역차별’ 운운 하면서 편협함을 드러내진 않을 텐데요. 밥 굶는 사람을 보면 가슴 아파하면서, 왜 코앞에 명확히 드러나는 성범죄, 성차별 문제는 자꾸 꼬리 자르기하거나 성별 싸움으로 몰아가는지…. 그게 참 아쉽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얘기할수록 그들의 편협함이 드러나는 거죠.

 

 

"왜 성범죄 문제에서는 선긋기를 할까요? 그런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자신은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여성을 도구화한다, 차별한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층위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힘 있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갖고 법을 만들고 영향을 끼치잖아요. 역사적으로 그 존재가 남성이라는 거죠.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좋아하고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라고 봐요. 힘 있는 사람은 그런 걸 인식할 필요가 없죠. 물론 그들도 힘든 게 있을 거예요. 이 사회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더 과도한 경제적 책임과 삶의 무게가 있어왔으니까요. 하지만 임금 차별 없이 성 평등한 세상이 온다면 여성이 남성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여성의 신체가 상품화될 일도, 여성의 몸으로 돈을 벌 이유도 사라질 것 같아요. 
여성의 신체를 자원화하고 거기에 가치를 매기는 사회니까 ‘일탈계’(SNS에 자신의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계정)도 생겨나는 거죠. 수요가 있고 힘의 논리가 들어가는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몸과 성이 상품이 되고 돈이 된다는 것도 내면화했고요. 거기에 사진을 올린 아이들이 문제가 있고 당할 만했다는 관점을 접하면서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요. 왜 그 아이들이 자기 몸을 드러내서 돈을 벌려하고 애정을 구하게 되었는지는 고민하지 않잖아요. 찬사와 애정, 다른 이익을 위해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협박과 강간을 당하고 비인간적으로 유린당하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서로 엄연히 다르다는 걸 구별할 수 있어야 해요.


‘내 딸이라면 그 근처에도 못 가게 제대로 교육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는 고치지 않으면서 정작 착취당하는 대상들이 조심해야 한다,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 자체가 누구에게 힘이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내 딸이면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건 이 땅의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는 말이에요. ‘난 그런 남자 아니야’ 하면서도 ‘남자는 다 늑대야’ 말하는 건, 자기 외에 그런 남자가 많다는 얘기잖아요.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셈이죠. ‘세상에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문화가 만연하니까 일단은 조심하자. 그런 세상이 이어지게 만든 아빠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렇게 사과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교육이 먼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바꾸기 위해서 정말 이를 악물고 애써야 해요. 


젠더 폭력 문제에서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말하거나 그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성과 관련된 문제는 잘잘못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쉽사리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사자에 대한 편견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있어요. 그래서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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