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3
진짜 삶을 살고 싶은 상윤의 이야기
“이제 진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진2] 10살이 되던 해에 가족으로부터 떠밀려 시설에 들어갔다. 주0재활원, 삼0재활원, 석암..
사진3]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내 삶은 20년 넘게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저 시설에서 이 시설로 떠밀리듯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 왔다.
사진4] 시설에서 나온다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석암의 시설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같이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진5] “진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함께 나갑시다.”
사진6]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삶에 대해 생각을 했다.
사진7] 비록 공원 한 켠에 작은 천막이었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던지 간에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진8] 다행히 우리의 농성과 서울시청 기자회견, 오세훈 서울시장 따라잡기 등으로 서울시는 우리에게 일정기간 거주할 집과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사진9] 아니, 해줬다기 보다 우리가 쟁취했다는게 맞겠다.
사진10]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녹록치 않았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사람들의 온갖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사진11] 차들은 내 앞을 가로막았으며,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뿐이었다.
사진12] 더욱 힘들었던 것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10배가 넘는 시간이 걸리고, 그릇에서 입까지 음식이 도달했을 때 숟가락에 남은 음식은 거의 없었지만, 혼자서 할 수는 있다고 답을 했다.
사진13] 내 상태를 확인하러 왔던 그는 나에게 아주 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책정했다.
사진14] 가진 돈은 탈시설 정착금 500만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재산 때문에 번번히 기초생활수급권 대상자 심사에서 떨어졌다.
사진15] 가족들이 나를 버렸다는 것, 수 십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것, 부모님의 재산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주민센터 공무원에겐 누군가의 넋두리로만 들렸던 것 같다.
사진16] 하지만 다시 시설로 돌아갈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시설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시설에서는 내가 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사진17] 지역사회에서 10년을 지내는 동안 나에게도 좋은 변화들이 생겼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여러번의 이의신청을 통해 만족할 만큼의 시간을 받게 되었다.
사진18] 공공임대 주택도 당첨이 되어서 진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렇게도 어렵던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진19] 아직도 시설에서 남에게 얽매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사진20]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마음을 먹고 하고자 하면 길은 열린다는 것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는 당신을 둘러싼 여러 관계들이 때때로 당신의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사진21] 10년전 시설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옷장과 이불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사진22] 그것들은 그때의 억눌렸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이 약해질 때 나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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